[진보·보수] (1) 진보vs보수? 좌파vs우파?

아니 글쎄, 저 이번에 커뮤니티에서 좌파라고 욕 먹었잖아요.

헉. 00님 정도면 중도 아닌가요?

그런가요...? 저는 제가 진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좌파까진 아닌 것 같거든요.

저기요... 근데 진보랑 좌파랑 다른 건가요?

(일동 정지)

...글쎄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정치성향을 일컫는 말이다. 어떤 이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입장 또는 사고방식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와 진보, 우파와 보수는 같은 말일까?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좌파는 나쁜 거고, 보수는 꼴통인 걸까? 뉴스에서 매일같이 들리지만 정리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용어들, 차근히 알아보자.

자크 루이 다비드 <테니스 코트의 서약> 1791

좌파와 우파


좌파와 우파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좌파의 좌(左)는 왼쪽, 우파의 우(右)는 오른쪽을 뜻한다. 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냐고?

좌파와 우파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의 국회였던 국민공회에서 의장석을 기준으로, 급진파는 왼쪽, 온건파는 오른쪽에 앉았다. 좌석 위치에 따라 급진파는 좌파, 온건파를 우파로 부르게 된 것이 좌·우파라는 용어의 시작이다. 누가 좌파고, 누가 우파인지는 시대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져 왔다.

현재 통용되는 좌·우파는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말한다. 각 파의 지향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좌파우파

경제적 평등, 성장보다 분배

국가 주도의 경제

노동자 입장 대변

공동체·사회 전체의 이익 중시

경제적 효율, 분배보다 성장

시장 주도의 경제

시장·기업 입장 대변

개인의 이익·경제적 자유 중시

좌파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입장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 비판적이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파효율적인 경제 성장을 중시하며,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유로운 시장을 위해 국가의 경제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하고, 불평등의 해소 역시 국가 개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 잠깐, 한마디로 말해 좌파는 사회주의고 우파는 자본주의 아닌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사회주의는 좌파가 주로 내세운 사상 중 하나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수단(토지, 공장, 기계 등)의 공유와 이를 통한 평등한 분배를 추구한다. 좌파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대안으로 이러한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좌파가 곧 사회주의인 것은 아니다. 좌파와 우파는 단일한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의 배분을 기준으로 한 이념적 지향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와 우파 안에서도 다양한 갈래가 있다.

진보와 보수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단어 자체의 뜻에서도 알 수 있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 보수는 ‘전통을 지킨다’는 의미다.

둘의 차이는 변화에 대한 태도에 있다.

진보
보수

변화에 적극적

기존 질서 개혁

이상지향적

변화에 소극적

기존 질서 유지

현실지향적

이러한 진보·보수의 특성은 인간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기반한다.

진보는 미국 건국과 프랑스 혁명의 씨앗이 된 계몽주의 정신에서 나왔다. 계몽주의는 기존의 신(神) 중심 질서가 아닌 인간 이성에 의한 질서를 추구하며, 인간은 이성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 사상이다. 예를 들자면 인간은 합리적 판단을 통해 전쟁을 하기보다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 계몽주의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그렇기에 평등하다.

진보의 입장에서 사회적 변화는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존 질서의 모순을 빠르게 개혁함으로써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인간의 이성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는 게 보수의 인간관이다. 보수는 이러한 인간 사회의 현실을 인정하고, 완벽한 평등은 불가능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보수가 신뢰하는 것은 기존 질서를 만든 전통이다. 역사의 시행착오를 거쳐 형성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전통이 만들어지고 유지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다. 따라서 보수는 필요한 경우에만 기존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지되어야 할 질서가 파괴되어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현재 진보·보수의 이념적 특징도 이러한 인간관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

진보
보수

분배

자유주의(개인의 사회적 자유 중시)

탈물질적 가치

성장

권위주의(권위와 질서 중시)

물질적 가치

1. 성장 vs 분배

아까 좌파·우파 설명할 때 나온 거 아니냐고? 그렇다. 좌파 성향을 가진 사람은 진보, 우파 성향을 가진 사람은 보수일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현재의 지배 체제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성장을 중시하는 사람(우파)은 결국 기존 질서의 유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 자본주의에 비판적이고 분배를 중시하는 사람(좌파)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2. 권위와 질서 vs 개인의 사회적 자유

보수는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전통적 가치에 부여된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즉 법, 질서, 전통, 종교, 위계질서를 따를 것을 강조한다.

반면 진보는 사회적 질서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이때 자유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개인을 표현할 자유, 즉 사회적 자유를 말한다. 따라서 진보는 여성·성소수자·유색인종·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권리와 평등을 강조한다.

3. 물질적 가치 vs 탈물질적 가치

20세기 이후 환경, 동물 보호, 핵 반대와 같이 새로운 정치적 쟁점들이 생겨났다. 물질적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변화에 능동적인 진보는 이러한 탈물질적 가치를 보다 쉽게 수용한 반면, 기존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보수물질적 가치를 상대적으로 중시한다.

정치는 진보 아니면 보수인 건가?


진보·보수와 좌파·우파는 절대적 기준이 아닌 방향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며, 한쪽이 옳거나 그른 것도 아니다.

정치에는 수많은 이슈가 있고, 각 이슈마다 개인의 입장이 다르다. 예를 들어 법과 전통의 권위보다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이 경제 이슈에 있어서는 국가의 개입에 반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적 배경에 따라 진보·보수의 특징이 달라지기도 한다. 유럽 정당들은 진보-좌파·보수-우파의 구분이 뚜렷하다. 좌파·우파 사상의 발전이 유럽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반면 서구에서 이런 사상들을 ‘수입’한 국가들에서는 진보·보수 진영과 좌파·우파 사상의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어떤 나라에선 진보가 지향하는 가치를 다른 나라에서는 보수가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민족주의가 대표적인 예다. 서구 국가의 경우 역사적으로 보수 세력이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자기 민족이 우월함을 내세워 식민지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반면 식민 지배를 당한 국가에서는 진보 세력이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기존 체제인 식민 지배를 무너뜨리기 위해 민족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진보가 아니면 보수, 보수가 아니면 진보인 것도 아니고, 보수면 나쁘고 진보면 좋은 것도 아니다. 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물어보기 전에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보자. 나는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그 생각은 어떤 성향에 더 가깝나?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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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이형관, 문현경(2017). 내가? 정치를? 왜?.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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