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당의 이합집산 역사 돌아보기

‘이합집산’은 갈라섰다가 합치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양을 말한다. 한국 정당의 특징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다. 한국 정당들의 역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편이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정당은 한나라당으로,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22년 간 존속했다. 단일 명칭을 가장 오래 유지한 정당은 박정희 정권 당시 집권여당이던 민주공화당(17년)이다.

반면 서구에선 백 년을 넘긴 정당도 많다. 미국 민주당(194년, 이하 2022년 기준)과 공화당(168년), 영국 보수당(188년)과 노동당(122년)이 대표적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자유민주당이 67년, 대만의 중국국민당과 민주진보당이 각각 103년, 36년 지속돼 한국의 어느 정당보다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 정당들과 한국 정당의 창당 연도 비교

2022년 현재 한국 원내 정당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존속한 정당은 정의당(10년)이다. 하지만 정의당도 최근 내년까지 재창당 후 당명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8년, 국민의힘기본소득당, 시대전환은 창당한 지 2년이 지났다.

한국 정당들은 왜 오래 지속되지 못할까? 당을 새로 만들거나 이름을 바꾸는 주된 이유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당의 이미지 쇄신이다. 정당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경항이 확실히 나타난다. 한국 역대 정당의 세 가지 갈래인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 진보정당의 역사를 살펴보자.

3당합당으로 시작해 박근혜 탄핵 이후 갈라졌던 보수정당

현재 보수정당은 3당 합당으로부터 출발했다. 3당 합당은 1990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진 사건을 말한다. 세 당은 이전까지 서로 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여왔다. 그럼에도 연합이 가능했던 것은 각 정당 ‘보스’들의 손익계산이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인물 중심으로 이뤄지는 한국 정치의 특징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민주자유당은 김영삼이 정권을 잡으며 여당이 됐다. 이후 당의 주류에서 밀려난 김종필은 민주자유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민주자유당은 1995년 신한국당으로 명칭을 변경한 뒤, 1997년 조순 전 서울시장의 민주당과 합당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한나라당이다. 오늘날 국민의힘은 한나라당을 공식적인 당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한편 김종필의 자민련은 창당 11년 만인 2006년 해산해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2008년에는 15대 대선후보였던 이회창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유선진당을 창당했다. 자유선진당은 충청권 지역주의와 김대중, 노무현에 맞섰던 거물 정치인 이회창을 앞세워 잠시 세를 키웠지만, 19대 총선 참패 이후 새누리당에 합당됐다.

2012년 한나라당 박근혜 위원장은 레임덕(임기 말 지지율이 떨어지는 현상)을 맞은 이명박 정부와의 거리두기를 위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다. 이름은 달라졌어도 꽤 오랜 기간 살아남은 새누리당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분열됐다. 새누리당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자유한국당으로 또 다시 당명을 변경했다. 유승민, 김무성 등 비박근혜계 의원들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이라는 제3지대 정당을 창당했다. 바른정당은 ‘보수의 개혁’을 외치며 주목받았지만, 탄핵 이후 시간이 지나 다수가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면서 급격히 축소됐다.

이에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며 개혁 보수 세력의 회생을 도모했다. 그러나 유승민계는 결국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정당 통합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당이 미래통합당이다. 미래통합당은 창당 7개월만에 이름을 바꿔 자리잡은 것이 현재의 국민의힘이다.

새천년민주당, 민주통합당, 더불어민주당… 비슷한 듯 다른 이름의 민주당

민주당의 실질적 기원이 어디인가를 두고는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1995년 김대중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자민련과의 연정으로 집권한 새정치국민회의는 세력 확대와 당 이미지 쇄신을 위해 새천년민주당으로 재창당됐고,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 유지에 성공했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 이후 민주당 개혁파 인사들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노무현 역시 여기에 함께했다. 이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문제삼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지만, 여론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편을 들었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었다. 민주화 이후 최초로 여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사례였다. 민주당계 정당 주류가 된 열린우리당은 ‘백년 이상 지속될 정당이 되겠다’고 외쳤지만, 갑자기 커진 몸집을 감당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 내 노선 차이로 인한 혼란이 극심했다. 당시 세간에서 열린우리당의 초선의원 108명을 두고 ‘108번뇌’라고 조롱할 정도였다.

열린우리당의 조직 약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의 정당 개혁에서 비롯됐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를 맡았던 정당 운영 방식을 바꾸려 했다. 일반 당원들이 당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고, 당 운영과 정부의 분리를 시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제왕적 총재가 사라진 자리를 채울 당 내 리더십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임기 말 주요 인사들이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세는 급격히 축소됐고, 노무현 역시 임기를 1년 남기고 탈당한다. 열린우리당 탈당파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고, 열린우리당도 여기 흡수된다.

이후 민주당계에서는 한동안 합당과 창당, 당명 변경이 반복됐다.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은 구 새천년민주당계와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하고, 2011년 당 바깥에서 활동하던 민주당계 정치인들까지 합류하면서 민주통합당이 된다. 이때 합류한 대표적인 정치인이 문재인이다. 민주통합당은 2013년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이듬해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이 된다. 하지만 얼마 후 안철수계가 탈당하며 국민의당을 창당한다. 이를 계기로 당명을 변경한 것이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다.

거대양당의 대안이 되고 싶은 진보정당

현재 대표적인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뿌리는 2000년 창립된 민주노동당이다. 그러나 2008년 심상정, 노회찬 등 사민주의 세력이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하면서 진보신당이 설립된다. 2011년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이 설립되면서 진보세력은 재통합된다. 유시민, 천호선 등으로 이뤄져있던 국민참여당이 합당했고, 심상정, 노회찬도 재합류했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역대 최다 의석인 13석을 확보하면서 진보정당의 전성기를 이끄는 듯 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후보 경선 과정에서 선거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창당 9개월 만에 분당됐다. 그 결과 2012년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천호선 등을 중심으로 진보정의당이 창당되고, 진보정의당은 1년 후 당명을 정의당으로 변경한다. 한편 2013년, 통합진보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정당 해산을 당하게 된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 음모 혐의로 고발된 여파였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원내 진보정당의 계보는 정의당이 잇게 됐다.

한편 원외에서도 다양한 진보계 정당들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해산된 통합진보당 세력은 이후 민중당 설립을 주도했고, 민중당은 이후 진보당으로 당명을 변경해 8회 지방선거에서 울산동구청장 당선자를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세 갈래의 정당 계보가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면, 정치적 방향성보다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선거 유불리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이던 세 ‘보스’들이 갑자기 합당한 3당 합당이 대표적인 예시다. 김종필의 자민련, 안철수의 국민의당에서는 인물이 당의 운명을 결정했다. 한나라당 역시 박근혜에 의해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박근혜의 개인 정당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열린우리당은 총재 중심의 정당 정치 관습을 깨고 당 운영의 혁신을 시도했지만, 통일된 방향성 없이 혼란만 거듭하다 막을 내렸다.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끌어오기 위해 정당의 간판은 쉽게 교체됐고, 그 중심에는 당이라는 집단이 아닌 거물 정치인 개인이 있었다. 선거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스타 정치인의 이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합집산의 혼란 속에서 정당이 지키지 못한 ‘알맹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