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vs 어린이집, 이제부터 고민 끝?

아무튼 정치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를 분류하는 4가지 카테고리는 사실 크게 보면 다 정치로 통한다.
일상의 현상들, 요즘 뜨는 이야기, 어쩌다 일어난 것 같은 사건 사고들에서 정치와의 연결고리 찾기.

*아래 사례는 실제 학부모의 경험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30대 A씨는 아들의 진학 문제를 두고 고민 중이다. 올해 3살인 아들은 내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다. 어린이집은 1년만 보내고 유치원으로 옮길 계획을 짰지만 뜻대로 될 지 확실치 않다. 아이가 많은 A씨의 동네에서 유치원 들어가기는 사립, 국공립 할 것 없이 하늘의 별 따기다. 같은 동네의 B씨는 지원한 유치원에 모두 떨어져, 영어유치원이라도 들어가기 위해 부랴부랴 면접을 준비시켰단다. A씨도 가능하다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7세까지 받아주는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A씨가 유치원 입학을 원하는 이유는 교육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모두 초등학교 입학 이전 연령의 영유아를 담당하지만 유치원은 교육, 어린이집은 보육에 초점을 둔다. 그렇기에 유치원은 만 3세 이상부터 다닐 수 있다. 관할 부처도 유치원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다. 교사의 자격증, 정부 지원 비용, 인력 기준도 다르다. 부모 입장에서는 고심할 수밖에 없다.

A씨의 고민은 앞으로 2년 뒤 해결될지도 모른다. 지난 12일, 정부는 2025년부터 어린이집의 관리·감독 권한을 교육부로 이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명 유보통합(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이다. 유보통합은 오랜 사회적 논쟁거리로, 김영삼 정부 때부터 그 필요성이 인정돼왔다. 드물게도(!)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동의하는 의제로 여러 정부에서 실제 추진에 나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못해 ‘통일만큼 어려운 유보통합’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30년 묵은 이 문제에 필요한 것은, 정치의 과감하면서도 정밀한 집도다.

유보통합, 그 험난한 길

유보통합이 시급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장에서 두 기관의 역할 차이가 거의 사라졌음에도 지원과 관리 체계는 다르다는 것이다. 2016년 만 3세~5세의 공통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도입되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교육 내용은 동일해졌다. 연구에 따르면 교육 효과의 차이도 거의 없다. 맞벌이 부모의 증가로 유치원에도 방과 후 종일반이 생기면서 보육 기능도 유사해졌다. 그럼에도 관할 부처가 달라 예산 운영이 비효율적이고, 교육청과 지자체별로 운영비와 각종 지원금이 달라진다. 영유아 교육과 보육을 함께 논의하기도 어렵다.

통합에 대한 공감대도 높고, 양 기관의 실질적 차이도 없다. 그럼에도 통합 과정이 지지부진한 원인은 개별 이해관계자들의 입장 차이재정 부담이다. 정리해보자면 아래의 4가지다.

1. 교사 자격 통일유치원 교사 자격증은 전문대 이상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해야 주어진다. 국공립 유치원 교사의 경우 임용시험도 치러야 한다. 반면 보육교사 자격증은 학점은행과 기타 교육원의 보육 과목을 일정 이상 이수하는 것만으로 딸 수 있다. 처우 차이도 크다.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교사의 월평균 급여는 최고 20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이에 유치원 측에서는 유보통합 논의가 나올 때마다 자격증과 처우를 통일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반발해왔다.

2. 시설 기준 통일유치원의 영유아 1인당 기준 면적은 어린이집보다 1㎡ 가량 넓다. 유치원은 조도, 소음, 실내 온도, 습도 등 내부 환경에 대한 기준도 두고 있다. 시설 기준을 유치원 수준으로 통일하게 된다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어린이집이 다수 발생한다. 반면 기준을 완화하면 시설이 하향 평준화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3. 재원 마련2022년 기준 유보통합에 필요한 재정 규모는 15조 2천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내후년까진 현직 교사 재교육 및 처우개선, 개선된 양성 체제를 마련하고, 시설 개선 비용도 지원할 방침이다. 이처럼 상향 평준화로 통합을 진행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비용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4. 재정 체제 통합정부는 2024년까지는 누리과정 재원인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유특회계)를 유보통합에 활용하고, 2024년에 통합 재원을 위한 법령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2024년 총선이라는 변수가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그 방향성과 속도는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유특회계는 현행법상 올해 만료될 예정이다. 국회에서 일몰 기한 3년 연장을 논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재원은 되지 못한다. 유특회계는 본래 유보통합 지연으로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임시 처방이다. 당시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이 부담하게 했는데, 지원 대상에 보건복지부 소관인 어린이집이 포함됐다. 이에 교육청은 ‘정부가 할 일을 떠넘겼다’며 예산 편성을 거부했다. 결국 누리과정 예산은 정부가 담당하면서 만든 것이 유특회계다. 임시 회계 체제이기 때문에 예산 책정 기준도 확실치 않고 불안정하다.

부처 이기주의라는 안개

결국 유보통합은 일원화된 시스템 형성의 문제다. 그 핵심은 부처 통합이다. 정부는 교육부 중심으로 통합 관리체계를 만들 방침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올해 안에 유보통합 추진단을 교육부 내에 꾸리겠다고 밝혔다. 유아교육·보육 관련 단체들도 대부분 교육부 통합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이전부터 양 부처 의견을 조정하기 위해 국무조정실 같은 제3의 부처에 추진단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교육부 주도의 통합에 불만을 표출하듯, 복지부는 지난 13일 보육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계획에는 2025년부터 보육교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관련 대학 학과를 졸업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추후 교육부 내 추진단의 방안에 따라 계획이 변경될 수 있음에도 보육 정책을 미리 내놓은 것이다. ‘교육부에 추진단을 두는 것은 편파적’이라는 게 복지부 관계자의 입장이다.

이런 식의 힘겨루기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있었다. 당시에는 논란 끝에 국무조정실에 유보통합추진단을 설치했다. 추진단에서 당장 실현 가능한 정책들을 시행해 순차적으로 통합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양 부처는 유보통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고유 업무를 타 부처로 이관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일명 부처 이기주의의 발현이다. 타 부처와 협력보다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정부 차원의 방향성보다 부처의 위신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다.

민간기업과 달리 행정조직은 고유한 업무를 두고 이를 중첩되지 않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기존 업무에 대한 관할권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정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업무 이관은 담당 공무원은 물론 부처의 규모와 이해관계를 흔드는 사안이기도 하다. 유보통합 실무로 넘어가기 전 ‘추진단 설립’을 두고서부터 잡음이 발생하는 이유다.

정부는 교육부 추진을 기조로 세우면서 이 문제에 선을 그은 듯 하다. 하지만 영유아에게 정말 필요한 방향의 통합을 위해선 복지부의 주도권도 어느 정도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보육의 전문성을 발전시켜온 것은 복지부다. 현재 어린이집 관련 업무는 복지부 인구정책실 보육정책관에서 담당한다. 중앙보육정책위원회와 육아종합지원센터도 복지부 산하에 있다. 반면 교육부에는 유아교육정책과만 있을 뿐, 보육을 담당하는 부서가 없다. 이에 복지부는 보육 담당 기관의 인력과 기능을 교육부에 떼어주더라도 전문성 있는 운영이 가능할지를 우려하고 있다. 업무 이관 과정에서부터 유보통합의 방향성까지 복지부를 배제하고선 논의되기 어렵다.

부처 이기주의는 30년간 유보통합을 시동 단계부터 좌초시킨 원인이다. 유아교육·보육계는 지지부진한 논쟁을 끝내기 위해선 실행 부처를 빠르게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아왔다. 정부는 이에 화답하듯 칼을 빼 들었다. 그러나 실질적 통합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과감함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양 부처와 현장이 치밀함과 끈기를 갖추고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이 해묵은 골, 잘 봉합될 수 있을까.

글: 에디터 건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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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종, 2020, 유치원과 어린이집 효과 분석: 유치원과 어린이집 경험이 아동의 인지 발달과 학업 수행 능력에 미치는 영향, 아시아교육연구 21권 1호, 1-20.
정윤진, 2021, 경쟁심과 한국 정부의 부처 이기주의 행태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행정학전공) 학위논문(박사).
최은영, 2015, 한국 유아교육과 보육 통합의 선결 과제, 육아정책연구 제9권 제1호(2015. 6.), 257-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