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정의당의 지난 10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창당 10주년을 맞아 정의당이 그간의 10년을 돌아보며 스스로 내린 평가다.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쓴 잔을 마신 정의당은 결국 재창당에 준하는 개혁 작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개혁의 출발선은 이번 달 실시된 지도부 선거다. 당대표 1차 투표에서 이정미 후보와 김윤기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고, 최종 당선인은 28일 발표된다. 이번 선거로 구성되는 정의당 지도부에게는 당명 개정, 새로운 당 노선 설정이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정의당이 스스로 ‘실패했다’는 아픈 평가를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재창당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10년을 뛰었지만 원외 정당에도 밀렸다
지난 10년 간 정의당의 최우선 목표는 ‘거대 양당 사이에서 살아남기’였다. 하지만 정의당은 선거를 한 번 치를 때마다 목표에서 점점 멀어졌다. 20대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은 2.37%에 그쳤다. 직전 대선에서 같은 후보가 얻었던 지지율 6.17%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치다. 심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소신 투표’를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표가 결집하면서 심 후보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몇 달 후 열린 제8회 지방선거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정의당은 전국에서 9명의 당선자밖에 내지 못했다(광역의원 2석, 기초의원 7석). 원외 진보정당인 진보당이 21명의 당선자를 낸 것(기초단체장 1석, 광역의원 3석, 기초의원 17석)보다도 적은 수치다. 잇따른 선거 참패에 당 내부에서는 인적, 구조적 혁신 요구가 이어졌다. 지난 9월에는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을 중심으로 비례대표 의원들의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비례대표 총사퇴 권고안 투표가 진행됐다. 투표는 부결됐지만 사퇴 권고 찬성률 역시 40.75%에 달해, 앞으로의 노선을 두고 당 내 의견차가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의당 1기 대표였던 천호선 전 대표,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공론화한 박창진 전 부대표 등이 정치적 노선 차이를 이유로 정의당을 탈당하면서 충격은 더욱 커졌다.
과연 무엇이 정의당을 여기까지 내몰았을까?
1.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정의당은 왜 민주당이 아니라 정의당이어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조국 전 장관 사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당시 민주당에 동조한 것은 악수였고, 남은 건 ‘민주당 2중대’라는 조롱 뿐이었다. 이후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검수완박 당시 치열하게 토론하지 못하고 찬성한 것을 후회한다’라고 말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2. 명확한 노선 설정에 실패했다.
특히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자 계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고, 페미니즘에서도 뚜렷한 방향성을 마련하지 못했다. 흔히 지적되듯이 노동과 페미니즘 중에서 취사선택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정의당은 어느 영역에서도 분명한 정치적 비전과 정책적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모호한 노선 속에서 유권자들은 거대 양당이 아니라 정의당을 선택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정의당 내 여러 정파들 사이에서 의견을 모아 당의 노선을 설정하는 것이 차기 지도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3. ‘심상정의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상정 의원은 지난 10년 간 정의당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고, 정의당 대선 후보로 두 차례나 출마했다. 노회찬 전 의원 사망 이후 당의 실질적 중심이었던 심상정의 리더십은 한계에 다다랐지만, 정의당은 그 뒤를 이을만한 역량의 정치인을 길러내지 못했다.
4. 지역적 기반이 약했다.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중 지역구 의원은 1명, 나머지 5명은 비례대표다. 정의당은 중앙정치에서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비례대표 확대 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당의 입지를 키우기 위해선 결국 지역에 기반한 정당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진보당이 이번 선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지역 현장에서 노동자와 노조를 중심으로 지지자를 늘려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선거 유불리를 떠나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하겠다’고 말하는 진보정당에게 현장과 지역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정당 재창당이 답이 될 수 있을까?
당대표 결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49.9%의 표를 획득한 이정미 전 의원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이 선출될 경우 정의당이 얼마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6년 정의당 대표를 지냈던 이 전 의원을 다시 대표로 선출할 경우 정의당의 정치적 모호함은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 전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심상정 후보와 경쟁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때”라며 정의당의 세대교체를 주장했지만, 여전히 ‘1기 정의당’의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 정당의 역사에서 ‘재창당’과 ‘간판 바꿔달기’의 역사는 유구하다. 필요에 따라 정당을 합치거나 쪼개고, 이미지 쇄신을 목적으로 당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 흔했다. 물론 이런 행보 자체가 문제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간판만 바꿔다는 것이 정당의 위기를 해결해준다고 믿는다면, 당의 정치적 비전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정의당의 재창당은 구태의연한 ‘간판 바꿔달기’를 넘어서 진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 다음 편 “한국 정당의 이합집산 역사 돌아보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