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애도와 책임은 함께

이런 클러버라면 주목

✔️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있는 모든 사람

✔️ 정부와 경찰의 책임 공방에 화가 나는 사람


지금 상황 알아보기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156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모두가 슬픔에 잠겨있는 와중에,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정치권의 행보가 분노를 일으켰다. 용산구, 서울시, 경찰, 행정안전부 그 누구도 곧바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11월 1일, 참사 당시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경찰의 과실이 확실해졌다. 정치권은 그제서야 태도를 바꿨다.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원인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던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사과했다.

정치권은 국민들의 부정적인 반응과 책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나오고 나서야 책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왜 ‘국가의 무한한 책임’이 있다면서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걸까?


알면 좋은 맥락

참사 직후 정부는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나누어 제시하면서 당장 후자를 논하기엔 어렵다고 말했다. 이 책임을 나누는 것이 왜 중요할까? 현재 법적 책임의 쟁점들부터 살펴보자.

  • 주최자가 없는 행사

    행정안전부, 경찰청, 용산구청은 참사 발생 직후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관리 매뉴얼이 없기에 사전 안전 관리와 공권력 개입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 역시 주최가 없기에 인파를 예상하고 대응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정부여당은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며 참사 현장의 위험성이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이 밝혀졌고, 윤석열 대통령은 “주최의 유무 문제보다 국민 안전이 중요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 112 신고 녹취록

    녹취록에 따르면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에 관련된 신고가 무려 11건이나 있었다. 녹취록 발표 이후 윤희근 경찰청장은 부실 대응을 인정하고, “현장 대처와 112 신고 대처가 미흡했다”며 사과했다. 또한 경찰 내부 감찰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이러한 발언이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며, 사전에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인원 충원에 소극적이던 윗선의 잘못을 지우는 것이라 반발했다.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매뉴얼이 없으면 책임도 없는 건가?

이번 참사의 책임에 대한 질문에 ‘매뉴얼 부재’를 꺼내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다. 법적 의무를 위반했을 때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법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조치도 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매뉴얼 개선까지 논의가 확장되지 못한다. 이미 있는 매뉴얼을 따르는 것만이 중요하고, 그 안에서 책임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게 관계자들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하지만 당장 현장에 있는 실무자들의 경우, 자신의 즉각적인 판단이 현장에 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매뉴얼을 넘어서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혹시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서, 매뉴얼에 없는 행동을 해서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무자들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연한 조치를 취하려면 결정권자들이 책임을 진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문제는 결정권을 가진 수뇌부마저도 매뉴얼 핑계를 댈 때다. 참사 발생 이틀 후인 10월 31일까지, 정부는 ‘정부와 경찰에게 무한한 책임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책임이 있는지 법적으로 따지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정부의 무한한 책임, 즉 정치적 책임은 어떻게 따져볼 수 있을까. 행정의 근본적 역할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국민은 안전 유지라는 행정의 기능을 신뢰하고 활동한다. 이태원에 몰린 사람들도 그곳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매뉴얼 없이 맞이하게 돼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사고였다’는 주장이 적절치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1)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 자체가 잘못이고, 2) 이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제도적 한계 이전에 행정 능력 부족이다. 심지어 많은 보도가 뒷받침하듯이, 3) 참사를 사전에 예방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경찰은 7년 전 이미 ‘주최 측 없는 다중 인파 사건’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도 정책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정부의 무한한 책임의 범위에 들어간다. 정부는 녹취록 공개 전까지 법적 책임은 매뉴얼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했기에 추궁할 수 없다고 봤고, 정치적 책임의 범위는 모호하게 하면서 관계자들의 책임 회피를 용이하게 했다.

사과가 왜 그렇게 어려워?

매뉴얼에 따른 법적 책임을 중심으로 ‘네 탓’ 공방이 이뤄지는 가운데, 사과를 미루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사고 원인을 규명한 뒤에 사과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민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고,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나오고 나서야 자신의 책임회피성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배상과 처벌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서도 핵심적이다. 사과는 곧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국가에게 국민을 지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배상을 논의할 수 있고, 누구의 잘못인지 규명해 처벌할 것인지를 얘기할 수 있다. 진정성 있는 재발 방지 노력도 마찬가지다.

이를 고려하면 사과는 곧 정치적 리스크다. 사과할만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면 상대편이 공격할 여지가 생긴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을 지는 과정에서 정부와 피해자 간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긴다. 쉽게 말하면 현 정부 입장에서 사과는 ‘일을 키우는’ 선택이다. 현장에 있던 실무자들을 처벌하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고 수뇌부를 교체해야 할 일로 벌려진다. 따라서 사과를 회피하는 것은 정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애도 기간에는 잘잘못을 따지는 정치적 논쟁을 멈춰야 한다주장했다. 하지만 애도와 책임이 분리돼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참사의 발생부터 애도 과정, 책임 규명까지 어느 것 하나 정치가 엮여있지 않은 것이 없다. 애도는 정치가 아니라는 말로 정치를 하는 모순적인 상황 속, 분노와 혼란을 타개할 수 있는 건 오직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 뿐이지 않을까.


오늘 담소 마무리

이미 여론은 정부 책임론에 기울어져 있다. 여당 내부에서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연 정부는 뒤늦게라도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정부의 빠른 대응을 기다리는 마음에 관련 뉴스를 자주 보게 된 클러버라면, 참사 소식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스트레스 증세가 심하다면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전화 상담(1577-0199)을 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4가지 안정화 기법을 통해 스스로 마음을 안정시킬 수도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든 이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애도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지킬 수 있길 바랍니다.

by 에디터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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