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독재자가 아닌 걸까

이승만 만큼 현대사에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은 없을 겁니다. 한쪽에선 그를 건국의 아버지, 전쟁 영웅이라며 존경하고, 다른 한쪽에선 독재자, 학살자라고 비판하죠. 역사학계와 대중은 비판론의 손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보수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승만 재평가가 공론장의 테이블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이승만 재평가에 진심입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각종 기념 사업을 열었어요. 정부여당의 근거는 그간 폄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공과 과를 모두 다루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총선 두 달 전, 이승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했습니다. 건조 에디터가 직접 보고 왔는데요.

《건국전쟁》은 “이승만이 한 것은 독재가 아닌 장기집권”이라고 주장합니다. 제주 4.3 사건을 비롯한 한국전쟁에서의 양민 학살과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은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의 굴곡”이었다고 표현합니다. 과를 숨기고 공만을 부각하는 것을 넘어 ‘과 역시 공으로’ 여기는 파격적인 재평가죠.

이승만은 정말 독재자도, 학살자도 아닌 걸까요?

다큐멘터리《건국전쟁》ⓒ김덕영 감독

*아래에 제시한 주장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에디터의 자의적 해석이 아니며, 자료조사를 통해 수집한 역사학계의 다양한 의견입니다.

독재가 아니라 장기집권?

《건국전쟁》은 이승만이 독재를 하지 않았고, 장기집권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근거는 이렇습니다.

  • 3.15 부정선거는 이기붕 부통령 당선을 위해 벌어진 것으로 이승만과 무관하다.
  • 이승만은 4선에 도전할 의사가 없었다.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자유당 지도자들이 나이 많은 이승만의 눈과 귀를 가리고 부정 선거를 주도했고, 강제로 이승만의 임기를 늘렸다.
  • 당시 국익을 위해선 이승만의 4선이 절실하기도 했다. 재일한인 북송 문제 등 미국의 일본 중심 반공 전략에 대응하려면 이승만의 외교 능력이 필요했다.
  • 이승만은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곧바로 여론을 수용해 하야했고, 4.19의 희생자들을 보며 슬퍼했다.
  • 독재의 조건은 언론의 자유가 박탈되거나 의회가 마비되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에서 언론과 의회는 자유롭게 활동했다.

독재와 민주화에 대한 영화의 입장은 “4.19 혁명은 이승만의 교육 정책으로 전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현재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이승만 정권을 ‘독재'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국정 역사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승만을 독재자로 보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1️⃣부정한 개헌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려 했고, 2️⃣영구집권을 시도했으며, 3️⃣반대 세력을 숙청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대통령 기념재단

발췌개헌(부산정치파동)

  • 1952년 7월 4일 이뤄진 정부수립 후 첫번째 헌법 개정입니다. 부산 피난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핵심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내각책임제입니다. 전자는 정부, 후자는 야당이 주장한 개헌안 내용이었습니다.
  • 최초의 헌법인 제헌헌법에서 대통령은 국회를 통한 간선제로 선출됐고, 재선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간선제를 통한 이승만의 재선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1950년 2대 총선에서 이승만 지지 세력이 대거 낙선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당선 가능성을 높이고자 직선제를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부결됐습니다.
  • 이에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해 야당 의원들을 구속했습니다. 헌병대를 통해 국회의원 47명이 탄 버스를 강제연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폭력조직을 동원해 여론을 조성했습니다.
  • 부통령 김성수가 사임하는 등 반발이 거셌지만, 이승만은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회를 해산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개입으로 가로막혔습니다.
  • 이에 이승만은 직선제에 내각책임제 요소를 일부 더한 발췌개헌안을 추진했고, 군경들이 둘러싼 가운데 표결을 진행해 통과시켰습니다. 자유 토론 없이 기립투표로 진행됐으며, 사실상 의결이 강제됐다는 점에서 위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사오입 개헌

  • 종전 직후인 1954년 11월 27일 공포된 두번째 개헌안입니다. 대통령 연임 제한을 초대 대통령에 한해 제외하는 내용입니다.
  • 이외에 국무총리제 폐지, 대통령 궐위 시 부통령 지위 승계 등 대통령중심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 제적의원 203명의 2/3인 135.333…명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찬성표가 135표로 부결됐습니다. 자유당은 다음날 ‘사람은 0.333이 있을 수 없으니 개헌정족수는 136명이 아닌 135명’이라며 개헌안이 가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3.15 부정선거

  • 1959년 3월 15일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은 대대적인 부정행위를 펼쳤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사망해 이승만의 4선이 확실시된 상황이었습니다.
  • 그러나 부정선거 준비는 조병옥 사망 전부터 이뤄졌습니다. 내무부는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4할 사전투표, 공개투표 등 구체적인 부정선거 방법을 지시했는데, 조병옥은 2월 15일 사망했습니다.
  • 부정선거에 대한 불만은 전국 각지의 시위로 표출됐고, 4월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승만은 4월 15일 특별 담화문에서 공산당이 데모를 사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4.19 혁명

  • 3월부터 경찰 발포와 폭력조직의 개입이 있었고, 진압이 갈수록 거세져 4월 19일엔 123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 이승만은 20일까지 부정선거를 인정하지 않다가, 26일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3.15 선거를 다시 실시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 하야 결정의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미국이 부정선거를 인정하라며 압력을 줬다는 평가도 있고, 당시엔 중립적 성향을 지키던 군이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승만이 독재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건국전쟁》의 주장은 위에서 나열한 이승만의 행적을 나란히 두고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헌을 주도했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대통령중심제를 추구했으며, 부정선거를 부인한 것은 영화의 평가와 충돌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내용들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이외의 반론들

  • 이승만 정권의 언론 자유: 이승만 정권에서 경향신문을 포함한 10여개의 신문이 폐간, 정간 처분을 받았습니다. 1958년 12월 통과된 국가보안법 개정안에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 담겼습니다.
  • 민주주의 교육: 이승만 정권의 의무교육은 미군정 시기 교육계 학자들의 요청으로 갖춰진 것이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민주주의보다 반공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학살이 아니라 사고?

《건국전쟁》은 이승만 정부의 민간인 학살을 ‘사건이 아닌 사고’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고라는 겁니다.

  • 제주 4.3 사건과 여순사건은 5.10 남한 단독 선거를 방해하려는 공산당인 남로당의 기획에서 시작됐다.
  • 민간인들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피해자 입장만 강조하기보다 원인을 제공한 공산주의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다.
  • 피해자의 모든 면을 정당화할 수 없다.
  • 군인, 경찰 희생자도 1000명에 달했고, 좌익 세력에 의한 학살도 있었다.

1948년 5월, 제주도 서중산간지대로 피신한 어린이들. 미국립문서록관리청 소장. ⓒSBS 뉴스

4.3에 대한 건국전쟁의 주장은 정부가 발표한 제주 4.3 진상규명보고서의 내용과 상이합니다.

  • 4.3의 원인은 1947년 3.1절 행사에서의 경찰 발포였습니다. 주민 6명이 사망했고, 이에 항의하며 제주도민 총파업이 시작됐습니다. 미군정은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제주도에 파견했고, 숱한 폭력 행위와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남로당 제주도당은 분노한 주민들과 5.10 선거 반대 투쟁을 결합시켜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 5.10 선거에서 제주도 선거구 두 곳만이 투표율 미달로 무효 처리되자,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공산 세력을 토벌한다며 강경진압을 감행했습니다.
  • 1948년 11월부터 해안에서 5km 밖의 지역(제주도 면적의 80%)을 오가면 무조건 총살하는 초토화작전이 실행됐습니다. 약 2만 5천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 1949년 1월 21일 작성된 국무회의록에 따르면 이승만은 ‘미국의 원조를 적극화하기 위해서 제주도 사건 등을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는 학살 사건도 있습니다.

  • 보도연맹 학살사건: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 전련자를 남측으로 인도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하지만 좌익 활동과 무관하게 생필품 보급 등을 이유로 가입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6.25 전쟁 발발 후 이들은 정치범으로 처형됐습니다. 명령은 ‘최상부'에서 내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희생자는 수만 명에서 20만명 내외로 추정됩니다.
  • 국민방위군 사건: 6.25 전쟁 중 청년들을 징집해 만든 군대인 국민방위군에서 간부들의 부정부패로 물자가 부족해 5만~9만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승만은 사건 책임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국방장관을 경질했습니다. 이승만이 직접 관련되지는 않았으나, 잘못된 인사와 행정에 대한 책임이 분명하다고 말해집니다.
  • 이외의 양민학살: 공산 세력 토벌을 이유로 한 국군의 양민학살은 전국에서 발생했습니다. 거창, 노근리, 영광 등이 대표적입니다. 진실화해위 신청 사건으로 좁히면 약 5만 8천명이 희생됐습니다.

이승만 재평가는 왜 중요할까

《건국전쟁》이 이승만의 공과 과를 모두 정당화하는 핵심 근거는 ‘남한이 북한을 압도했다'는 겁니다. 공산화를 저지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 경제발전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건국전쟁》은 이를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 형성으로 연결짓습니다. 전쟁 후 공산주의의 폐해를 깨달은 한국인들이 단결해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나서면서 진정한 국민으로 거듭났다는 것이죠.

반공을 기반으로 국가를 건설했고, 반공을 통해 국민을 지켰으며, 반공을 중시하는 국민을 만들었습니다. 이 서사가 완성되려면 건국의 출발점은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건국절 논란이 등장하는 지점입니다.

영화에서 한 인터뷰이는 "건국이 무엇인지, 무슨 의미인지 다들 모르고 있다"고 개탄합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아닌, 5.10 남한 단독 선거와 6.25 전쟁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와 공산주의, 최초의 적을 누구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세계관과 목표는 크게 달라집니다. 위치와 역할이 바뀌는 사람도 있겠지요. 국가 정체성의 문제는 곧 나의 정체성 문제입니다. 따라서 《건국전쟁》은 말 그대로 이 나라에서 살아온 나의 삶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건 전쟁입니다. 이승만 평가는 그 최전선에 있고요.

그렇다면 이어질 질문은 이게 아닐까요. 이 전쟁에서 이겼을 때 이득을 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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