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좌돌, 진보정당의 역사
12월이면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됩니다. 총선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인데요. 그만큼 이번 달 들어 정치권은 매우 분주합니다. 매일같이 정당 구도의 변화를 점치는 새로운 뉴스가 들려오지요.
총선을 앞두고는 늘 창당과 합당이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특히 진보정당이 요란해보입니다. 현재 존재하는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의당이 깨지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정의당이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지만, 사실 진보정당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진보정치의 공간 창출부터 지지층의 가시화까지 여전히 탐색 단계에 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그러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죠.
진보정당이 현재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전의 시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근본적 정치 탐구>에서는 진보정당의 역사를 훑어보려 합니다.
본격적인 진보정당의 출현
한국 정치에서 ‘진보’라는 말이 떠오른 것은 불과 30년 전입니다. 정당에서 공개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는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보수여당 vs 민주화를 지지하는 보수야당의 갈등이 정치의 중심이었습니다. 진보정당 운동은 이승만 정권의 진보당 사건* 이후 줄곧 지하에서 이뤄졌고, 민주화 이후에도 보수정당 중심의 정치체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1987년, 진보정치 세력은 보수야당과 연대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 진보정당의 지지 기반이 되는 노조운동 세력도 확장됐습니다. 6월 항쟁 이후 민주노조**가 급증했고, 1995년엔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는데요.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진보정치 세력화를 목적으로 한 건설국민승리21이 창당됩니다. 진보정치연합과 민주노총,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주도했습니다. 대선 후보로는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이 나섰습니다. 당시 공약으로는 평생 고용 보장, 퇴직금 완전 보장,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 있었습니다. 대선 득표율은 1.2%에 그쳤습니다. 2000년, 국민승리21은 민주노동당으로 재창당합니다.
*진보당 사건: 1956년 대선에서 진보당 조봉암 후보가 선전하자 이승만 정권에서 반공법 혐의를 씌워 사형시킨 사건.
**민주노조: 노동자를 억압하던 기존 어용노조가 아닌, 노동자를 위한 민주적 노조. 민주노조운동은 70년대에 등장했으나 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활동이 중지됐습니다.
🔵 민주노동당(민노당)
- 민노당은 노조운동과 진보정치가 결합한 최초의 진보정당이자,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은 민노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약속했습니다.
- 2002년 16대 대선에서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무려 3.9%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대선 토론에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민노당의 인지도가 올라갔습니다.
-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습니다. 이 성과로 민노당은 지금까지도 역대 진보정당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습니다.
- 진보정치의 대중화를 이뤘다고 평가됩니다. 민노당이 제안한 의제로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 카드수수료 인하, 장애인교육지원법 개정 등이 있습니다. 그간 한국 정치에서 다루지 못한 진보적 의제들이었습니다. 기성 정당에서도 일부 의제를 받아들였습니다.
🤔민주당이 진보정당 아냐?
- 김대중 정부까지 민주당은 ‘진보’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민주당계는 ‘온건 보수’, 민정당계는 ‘강경 보수’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진보적 색채를 띄었다는 평가는 있지만, 본격적으로 진보 정치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두 정권은 특히 경제 정책에 있어 시장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자 보호와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보였습니다.
- 진보의 가치를 언급하기 시작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이후 진보와 보수 개념과 둘의 대립 구도가 대중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내부갈등에 막힌 반짝 성공
🔨 민노당의 위기
원내 진출의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당내에 잠재돼 있던 이념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민노당에 합류한 다양한 운동 세력은 ‘진보정치의 정치세력화’를 공동의 목표로 삼아 노선 차이를 묻어두고 있었지만, 총선 이후 억눌린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 NL과 PD라는 운동권 내 정파 대결이 민노당에서도 반복됐습니다. NL은 자주파, PD는 평등파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내 주류는 자주파였습니다.
- 두 정파는 북한에 대한 태도를 두고 차이를 보였습니다. 북한 핵실험 논란, 일심회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그 간극이 더욱 벌어졌습니다. 평등파는 북한에 대한 자주파의 미온적 태도가 민노당이 친북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며 비판했습니다.
- 노무현 정부의 여당인 열린우리당과의 관계 설정을 두고도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자주파는 비판적으로 지지하자는 입장, 평등파는 차별화된 정책을 내놓자는 입장이었습니다.
- 당내 갈등으로 동력을 상실한 결과는 2007년 대선 참패였습니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은 3%에 불과했습니다. 원내 입성 전인 2002년보다 못한 성적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힘을 합쳐 보수정권에 맞서야 한다는 논리가 대두됐습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를 거치며 연합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도 커졌습니다.
민주당이 스스로를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위치에 세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촛불 시위 이후 민주당은 진보정당의 정책 일부를 흡수했고, 진보정당은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일심회 사건: 2006년 민노당 주요 당직자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남한 동향을 보고해 검찰에 간첩죄로 구속기소된 사건. 보고된 정보 중엔 민노당 당직자들의 신상도 있었는데, 자주파 인사들이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아 평등파의 반발이 일었습니다.
⬛ 진보신당
2007년 대선 참패 후, 민노당 평등파가 대거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때 주축이 된 인물이 노회찬, 심상정입니다.
-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창당했으나 원내 진출에는 실패했고, 2009년 재보선 선거에서 1석을 획득했습니다.
-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모두 있는 해였습니다. 이에 2011년부터 진보대통합으로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통합당과 진보정당이 연합 집권한다는 기획으로, 그 전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요구됐습니다.
- 이 기획에 참여할 지를 두고 진보신당 내에서 갈등이 일었습니다. 핵심 인물인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는 참여 의사를 밝히며 탈당했습니다.
- 진보신당 탈당파와 민주노동당, 그리고 유시민 등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만든 국민참여당이 결합해 2011년 통합진보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로써 민주노동당은 사라졌고, 진보신당은 유지됐습니다.
🟪 통합진보당(통진당)
통진당은 제3정당을 목표로 한 민주노동당과 달리, 민주통합당과 연대해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 대항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보정당 계열이 아닌 국민참여당이 합류한 것을 두고 논쟁이 있기도 했으나, 민주노동당과의 차별화 지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은 13석을 얻었습니다. 진보정당의 역대 최다 의석이었습니다.
- 그러나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부정경선이 발생했습니다. 당내 실세였던 NL 계파 경기동부연합과 국민참여당 출신이 주도했습니다.
- 당내 PD 정파와 온건 NL은 부정경선을 계기로 통진당을 탈당해 2012년 진보정의당을 창당했고, 2013년 정의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 그런 와중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이 터졌습니다. 경기동부연합 소속인 이석기 의원과 지하혁명 조직이 내란을 시도했다고 국정원에서 고발한 사건입니다.
- 그 결과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 전원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습니다.
- 이석기 의원은 내란음모 혐의 무죄, 내란선동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지하혁명 조직의 존재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사건을 계기로 진보정당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고, ‘진보정당=종북’이라는 프레임은 강해졌습니다.
정의당의 10년, 반복되는 분열?
이후 진보신당과 통진당은 어떻게 됐을까요? 두 정당의 후신은 여전히 진보정당 지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재 진보4당으로 불리는 정당은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진보당입니다.
🟨 정의당
- 정의당은 창당 후 10년간 유지되며 대표적인 진보정당이 됐습니다. 2016년, 2020년 총선에서 각각 6석을 얻었습니다.
- 2015년 노동당 탈당파 등의 진보정당과 ‘진보 4자통합’을 이뤄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이때 통합된 이들은 정의당 내에서도 좌파 성향이 강한 정파로 자리잡았습니다.
- 그러나 통진당에서 겪은 혼란의 여파는 지속됐습니다. 민주당과 차별화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2020년 총선에서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였지만 위성정당 꼼수에 당하는 등 역량이 약해졌습니다.
🟧 노동당
- 진보신당은 통합진보당 창당 후, 1998년 창당해 고군분투하던 사회당과 합당해 2012년 진보신당연대회의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당명을 노동당으로 변경했습니다.
🟩 녹색당
-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창당됐습니다. 생태주의와 페미니즘, 소수자 보호를 핵심 가치로 내세웁니다.
-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할 지를 두고 당내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신지예 전 대표 등 인지도가 높던 인물과 핵심 당원들이 탈당하고 당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부침을 겪었습니다.
🟥 진보당
- 통진당 해산 후 경기동부연합은 민중연합당, 울산, 인천연합은 새민중정당을 만들었습니다.
- 두 정당은 2017년 합당해 민중당을 창당했고, 2020년 진보당으로 당명을 바꿨습니다.
- 2023년 전북 전주을 재보궐 선거에서 강성희 의원이 당선돼 1석을 얻었습니다. 현재 10만명의 당원을 확보해 진보4당 중 조직력이 가장 좋고, 지역에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 과거 민노당 자주파처럼 민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입니다.
➕ 기본소득당
- 2019년, 노동당의 간부였던 용혜인과 신지혜가 기본소득당으로의 당명 개정을 추진하다 탈당해 2020년 기본소득당을 창당했습니다. 노동당은 2022년 사회변혁노동자당과 합당했습니다.
- 현재 기본소득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인 용혜인 의원은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더불어시민당은 더불어민주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의 선거연합 정당이자 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습니다.
- 노동당 출신들이 창당했지만 탈당 과정에서 논란이 컸습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다는 이유로 진보정당으로 여기지 않기도 합니다.
2024년 총선 계획은?
-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진보당에 선거연합정당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당내 세력들이 있어, 진보정당 구도가 또 다시 요동칠 것으로 보입니다.
- 진보당: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도 함께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자고 정의당에게 역제안했습니다.
- 기본소득당: 개혁연합신당을 제시했습니다. 정의당을 탈당한 국민참여당 출신들 중심 사회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합류했습니다.
-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과 조성주 전 정책위원장은 당내모임 세 번째 권력을 만들어 선거연합 정당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정당을 만들 것을 주장했습니다. 진보정당의 전통을 붙들고 있기보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함께하는 제3지대를 개척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금태섭 민주당 전 의원과 함께 새로운 선택을 창당했습니다.
현재 진보정당들의 상황은 선배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1987년 이후 진보정당의 체제가 만들어지며 생겨난 구멍들이 여전히 메워지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문제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구멍들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논의로는 크게 5가지가 제안됩니다. 1️⃣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리하고, 2️⃣민주당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며, 3️⃣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 간 갈등을 중재해야 하고, 4️⃣진보정당다운 차별화를 이루는 동시에 5️⃣설득력 있는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총선을 앞둔 진보정당의 주된 전략은 연합입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역사에 따르면, 이질적인 세력의 연합은 실익보다 분열을 앞당길 뿐입니다. 심지어 반복되는 이합집산으로 진보정당에 대한 피로도는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과연 내년도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내딛을 발걸음은 과거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다음주 <근본적 정치 탐구>에서는 진보정당 분열의 중심, NL과 PD 논쟁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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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성. [무등의 아침] “정의당 선거연합정당 1월 말쯤 가시화…‘尹 정부 심판’ 모든 세력과 연대”. 2023.12.14. KBS.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41931 2023. 12. 19.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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