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년, 정치가 한 일

정치란 무엇일까요?

가장 보편적인 정의는 권력에 의한 자원의 분배입니다. 그 방식에서 권력의 가치관을 엿보게 됩니다. 정치 권력은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볼지 결정하고 지배적인 담론을 만들며, 그에 따른 자원 분배의 규칙을 만듭니다.

따라서, 세월호는 정치적인 사안입니다. 참사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들을 둘러싼 자원의 분배를 고려해 만들어집니다. 각자의 관점에서 담론과 규칙이 제시되고 시민들은 그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지난 10년 간 그래왔습니다.

애증의 정치클럽에서는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세월호를 둘러싼 정치를 살펴봅니다. 10년 간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 참사와 정치가 만날 때 드러난 권력의 문제를 얘기합니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

선원과 해경의 책임회피로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배가 기울자마자 도망친 선장과 선원들은 살았고, 남아서 승객 유도 의무를 수행한 선원들은 사망했습니다. 해경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승객 퇴선 결정을 선장에게 미뤘고, 구조 작업에도 소극적이었죠.

한편 청와대의 책임은 가려졌습니다.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현장의 영상이었습니다. 대통령에게 보고할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였죠. 당시 청와대와 해경의 연락 내역을 살펴보면 남아있는 승객의 구조 여부를 묻거나 즉각적인 구조를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그날 오전 쉬고 있어 곧바로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건 발생 1시간 후에 보고를 확인했고, 이후의 7시간 동안에도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질문을 반복했고, 구조 논의는 미뤄졌습니다.
  • 이후 청와대는 책임 회피에만 전력을 다했습니다. 참사 2주 뒤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타워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오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해 7월 비서실장 김기춘은 국정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는 사고 상황과 구조를 지휘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그러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는 ‘청와대(국가안보실)가 재난 대응에 대한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청와대는 이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뤄진 무단 변개였습니다.
  • 정부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는 유병언에게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압수수색을 생중계하고 검거 상황에 대해 검찰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이례적으로 요란한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언론은 이에 응해 관련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세월호는 관리대상

  • 정부는 세월호와 관련된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지방선거를 한달 앞두고 참사가 벌어졌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습니다.
  • 각계에서 비판 시국선언과 추모행사가 진행되자 정부는 ‘관리’에 나섰습니다. 세월호참사 시국선언 참여 교수 명단을 작성해 정부 위원회 위원 임명 과정에서 부정평가를 주었고, 문화예술인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습니다.
  • 기무사와 국정원은 유가족을 불법 사찰했습니다. 유가족의 정치적 성향, 경제적 형편, 관심 사항 등을 파악했고, 이를 기반으로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려 했습니다. 관련해 일부 관계자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기무사는 참사 일주일 뒤부터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반정부 종북좌파’의 동정을 확인하겠다고 계획했고, 5월엔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를 종북세력으로 규정했습니다.
  • 세월호 특별법과 특검 요구가 본격화되자, 정치권은 유가족의 ‘순수성’을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법에 “순수한 유가족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언론에선 유가족이 요구한 적 없는 보상금과 특례 문제가 부각되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정치적’이라고 비난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 2014년 하반기부터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가 이어졌습니다.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김재원은 특조위 설립 단계부터 “세금도둑”이라 비판했습니다. 설립 이후에는 청와대의 총괄로 관계 부처들이 역할을 나눠 방해 행위를 펼쳤습니다. 청와대에서 특조위를 축소하기 위한 시행령을 마련해 통과시켰고, 여당 추천위원들은 조직적인 행동으로 조사를 무력화했으며, 예산 압박도 계속됐습니다.

한겨레21 안영춘 기자는 세월호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응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진상 조사 요구에 대한 국가의 탄압과 진상 조사에 대한 조직적 방해, 하위직만 수사하고 처벌하는 수사기관, 유가족에 대한 감시와 배·보상에 눈먼 존재로 낙인찍기는 촘촘히 엮여 있다.”

핵심은 정부의 책임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권력기관은 집권 세력에 대한 위협을 제거한다는 목적 하에 일심동체로 움직였고, 유가족은 그 판의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0년 후에 달라진 일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조위가 해산되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진상규명을 계속했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제도적 개선을 말해왔습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 통과

1️⃣ 재난 컨트롤타워 명시

  • 재난 예방, 대응, 수습을 총괄하는 국민안전처가 생겼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임을 부인했기에, 다른 컨트롤타워를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 문재인 정부에서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안전처는 폐지하고, 청와대 위기관리센터행정안전부에 컨트롤타워 기능을 넘겼습니다.

2️⃣ 대응 체계 정비

  • 대응 체계 혼선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긴급구조 활동을 할 땐 우선 소방서장의 지휘를 따르고, 이후 시·군·구 부단체장이 수습하게 했습니다.
  • 경찰·소방·해경이 신속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습니다.

3️⃣ 재난 조사·평가 의무

  • 정부가 재난 발생 원인과 대응 과정을 분석한 재난백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이외에도 학교 생존수영 교육 도입, 현장체험학습 매뉴얼 제정, 중대재해처벌법 신설 등의 제도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진상규명

  • 앞서 설명한 청와대의 개입은 2018년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밝혀낸 것입니다. 사참위는 재난 역사상 최초의 독립조사위원회로, 특조위 강제 해산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진상규명을 이어가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 사참위의 진상규명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침몰의 직접적 원인을 밝히지 못했고, 조사 과정에서 음모론의 개입도 있었습니다. 수사권 없이 비협조적인 일부 기관을 상대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 그러나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진상규명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다고 평가했습니다.

    진상규명이라는 것이 ‘위법하냐, 위법하지 않느냐’만을 가리는 조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도 세월호를 계기로 알게 됐다. 법 위반만 없으면 검찰은 기소할 수 없고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된다. 그러나 재난·참사가 일어나는 데는 구조의 문제, 행정상의 공백, 문화적 측면이 모두 작용한다. 이제는 가족분들 사이에서도 ‘법적인 부분만 따져선 안 됐던 거구나, 제도를 바꾸고 구조를 바꾸고 관행을 바꿔야 했던 부분이구나’라는 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 책임을 묻는 것도 사법적 책임만큼이나 정치적 책임이나 도덕적 책임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형사처벌

  • 세월호 참사 관련 형사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크게 1️⃣민간 업체의 침몰 원인 제공, 2️⃣ 해경의 구조 실패, 3️⃣ 유가족 사찰 등 2차가해 관련으로 나뉩니다.
  • 선장과 청해진해운은 2016년 유죄가 확정됐고, 해경은 말단 인사 1명만이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해경 지휘부 9명은 무죄를 받았습니다.
  • 유가족을 사찰한 기무사 간부는 지난해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10주기 당일에는 박근혜 정부 인사들의 특조위 설립·활동 방해 혐의가 일부 유죄로 확정됐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하지만 10년의 변화는 부족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와 오송 참사에서 세월호의 문제는 반복됐습니다. 여전히 컨트롤타워는 뒤늦게 작동했고, 재난안전통신망은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행안부의 재난 원인 조사도 없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도, 책임자가 지키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됩니다. 책임질 의무를 넘어 책임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세월호 유가족들이 실질적 변화를 위해 요구하는 법안입니다.

  • 안전권 명시: 기본법에 안전권을 명시해 국가와 기업의 책무를 강화합니다.
  • 피해자 권리 보장: 현 재난기본법에 빠져있는 피해자 개념을 정의하고, 안전사고 시 피해자의 권리와 피해지원 원칙을 명시합니다.
  • 진상규명: 상시적인 독립조사기구를 설치하고, 예산 및 인사의 독립성과 피해자 참여를 보장합니다.
  • 안전영향평가: 국가 사업을 계획할 때 안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미리 분석하게 합니다. 또한 안전사고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핵심은 피해자 중심적 시스템의 마련입니다. 세월호 이후 벌어진 참사에서도 피해자들은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응 기관 간의 협업 부실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고, 생존자 병원 호송과 시신인계 등의 과정에서도 혼선이 발생했습니다.

법안은 2020년 발의됐지만 21대 국회에서 아직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됩니다.

✅사참위 권고이행

  • 사참위 보고서는 최초로 피해자 관점의 재난 방지 권고안을 내기도 했습니다. 총 12개의 분야로 이뤄졌는데요. 416연대의 분석에 따르면 정부가 이행한 분야는 하나 뿐이었습니다. 해양재난 수색구조 체계 개선입니다.
  • 국가의 책임인정과 사과, 피해자 사찰 및 조사방해 행위에 대한 추가 조사 및 감사, 재난 피해자의 알 권리 보장과 정보 제공·소통 방식 개선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 재난 피해자의 인권침해 및 혐오 표현 확산 방지책 개선, 선사·선원 안전 운항 능력 제고 및 책임 강화, 여객선 등 선박 안전관리 체계 개선, 세월호참사 희생자 추모 사업의 중단 없는 추진, 사회적 참사 기록 폐기 금지 및 공개·활용 방안은 부분적으로 이행됐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정치는 있었습니다.

피해자 관점의 참사 대처와 제도적 예방책을 요구하는 것은, 피해자와 안전을 위한 자원의 분배를 말하는 정치입니다. 유가족과 관련 단체에 색깔론을 씌우고, 정작 유가족 사이에선 언급된 적 없는 보조금을 쟁점으로 띄우며, ‘안전불감증’을 참사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실무자의 책임만 얘기한 것도 정치입니다.

여전히 참사는 정치적 사안입니다. KBS는 ‘4.10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을 취소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가 정치 집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태원 유가족과 세월호 유가족은 총선을 앞두고 “생명안전 국회를 만들겠다 약속한 후보에게 투표해달라”고 함께 외쳤습니다.

10년이란 세월은 분명 변화를 일으켰지만, 어떤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참사를 왜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냐”는 질문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봅니다. 어떤 정치가 좋은 정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