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방옥숙>: 우린 그저 집값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팝콘폴리틱스》는 문화콘텐츠에 나타나는 정치적 배경을 ‘덕력’ 넘치는 시각으로 파헤쳐보는 콘텐츠입니다.
만약 당신이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신축 오피스텔이 들어서 한강 조망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다면 어떨까?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됐던 만화 〈위대한 방옥숙〉은 49층 오피스텔 신축 계획에 맞서 한강 조망권을 지키려다 시체 유기까지 저지르는 ‘노블골드캐슬 아파트’ 부녀회의 이야기다.
“우리가 어디서 몇억을 벌어? 아파트 아니면 꿈도 못 꾼다고. 우리 같은 서민들한텐 오로지 아파트밖에 없어.”
반지하 빌라에 살고 있던 주인공 방옥숙 씨는 지인의 말을 듣고 무리해서 대출까지 받아 ‘매미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됐다. ‘매미 아파트’라는 투박한 이름을 ‘노블골드캐슬’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한 것도, 구치소 건립을 방해하고 임대아파트로 난 아파트 출입구를 막은 것도 부녀회 실세였던 방옥숙 씨가 주도했다. 방옥숙 씨에게 아파트의 의미는 남달랐고, 이는 다른 부녀회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들으면 그냥 평범한 아줌마들 이야기 같지만, 〈위대한 방옥숙〉은 부동산과 관련해 이뤄지는 중산층 여성들의 역할 수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웹툰이다. ‘방옥숙’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배경엔 아파트를 중산층의 상징으로 올려놓은 고속성장기 한국의 주택 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방옥숙’ 이전에 ‘복부인’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여성의 사회 참여와 경제활동이 제한돼왔지만,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 부동산 투기를 주도한 사람들은 주로 가정주부였다. 세간에서는 복덕방을 들락거리며 돈 굴리기에 열중했던 이들 여성들을 ‘복부인’이라고 불렀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복부인은 ‘부동산 투기로 큰 이익을 꾀하는 가정부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된다. 이처럼 복부인은 복덕방을 드나들며 지대수익을 노리는 속물적인 부인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980년 임권택 감독은 《복부인》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여기에도 이런 부정적 시각이 그려져 있다. 쉬이 말해 ‘가정에 충실해야 할 가정주부들이 살림은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투기에 뛰어든 현상을 반대로 뒤집어보면, 부동산에 대한 가족의 공통된 욕망을 주부들이 맡아 수행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박완서의 단편소설 「낙토의 아이들」을 보면 부동산을 두고 이뤄지는 여성들의 역할 수행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낙토의 아이들」에서는 경제능력이 없는 시간강사 남편을 대신해 부동산 거래로 아파트를 마련하고 자산을 늘려나가는 아내의 모습이 묘사된다. 남편은 투기에 열중하는 아내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가족을 중산층 지위에 올려놓은 아내의 공적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부동산 투기는 가정 전체의 욕망이었다. 단지 그것을 여성이 맡아야 했을 뿐이다.
가정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사명으로 부동산 투기에 뛰어든 것도, 그로 인해 ‘복부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것도 여성들이었다. 방옥숙 씨와 부녀회원들은 억척스럽게 삶과 가정을 지켜온 아줌마들의 표상이라고 할까?
‘내 집 마련’ 신화: 정부의 자가소유가구 육성 프로젝트
오늘날 부동산 투기는 집값 폭등의 원흉으로 지목되지만, 사실 70~80년대 한국의 부동산 정책 자체가 민간의 투기를 장려하는 방식으로 출발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960년대 이후 도시화로 인해 발생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주택 대량 공급에 나선다.
문제는 부족한 재정이었다. 적은 돈으로 최대한 많은 집을 짓기 위해 정부는 민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일례로 박정희 정부는 주택을 공급하고 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실시했다. 말 그대로 무질서한 토지를 깔끔한 구획으로 정리하고, 소유권 역시 재분배한 사업이다. 정부는 주택을 세우는 구역만 지정하고, 개발 비용은 토지 소유자들이 전부 부담하며 그 대가로 소유자들과 투자자들이 개발 이익과 지대 차익을 가져간다. 적은 재정지출로 주택 공급에 성공하니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정책이었다.
민간 자본을 동원한 주택의 대량 공급으로 정부는 자가소유 가구를 대거 양성하는 데 성공했다. 건설사들은 선분양을 통해 건설자금을 조달했고, 내 집 마련(과 지대 차익)을 노리고 뛰어든 사람들 덕분에 손쉽게 자금을 모아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어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된다. 이미 있는 부지를 매입하는 것에 더해, 건설사들은 강남에서 한강변의 공유수면을 매립해 아예 없던 땅을 말 그대로 만들어서 아파트를 짓기까지 했다.
개인 가구가 보유하게 된 주택에 대해서는 세금까지 적게 물렸다. 한국은 2000년대 초까지 부동산 보유세에 대해 (시장가격보다 한참 낮은) 공시지가의 20~30%에 불과한 액수만을 보유세 과세표준액으로 계산했다. '자가소유가구 육성 프로젝트'라고 부를 만한 정책적 노력을 통해 정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중산층’이라고 불리는 중간 계층 양성에 성공했고, 이들은 정권의 안정적 지지기반으로 자리잡았다.
토지공개념? 이제 와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기의 부동산 정책은 개발 이익과 지대 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를 정부가 나서서 조장한 꼴이 됐다. 민간 자본에 의존한 주택 공급 정책은 80년대 ‘3저 호황’이라고 불리는 고속성장과 맞물려 주택가격을 급등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80년대 말에는 토지소유자 상위 5%가 전국 사유지의 65.2%를 차지하는 등, 토지소유의 불평등 역시 극심해졌다.
주택 가격 문제와 특정 계층의 부동산 과점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하게 된다. 토지공개념은 쉽게 말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부동산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개념으로, 당시 제정된 3법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택지소유상한법
대도시에서의 택지 소유를 200평으로 한정하는 법. -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사업으로 인한 땅값 상승분의 50%를 조세로 환수하는 법. - 개발이익환수법
정상지가 상승분을 초과해 발생한 개발이익을 개발부담금으로 환수하는 법
군사정권의 후신인 노태우 정부가 도입했지만, 토지공개념 3법은 ‘사회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급진적인 재분배를 시도한 부동산 정책이었다. 일부 계층이 부동산을 과점하는 것을 막고 지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택지소유상한법과 토지초과이득세법은 결국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고 폐지되고 만다.
이후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도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부동산 세제 개혁에 나섰지만, 잘 알려졌다시피 이는 엄청난 조세 저항에 부딪혔다. 흔히 이런 저항을 다주택자를 비롯한 기득권층의 반발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부동산 세제 개편에는 ‘중산층’으로 불리는 자가 소유 가구들 역시 거세게 반발했다. 애초에 정부가 돈을 쓰지 않기 위해 민간의 자본을 동원해 아파트와 주택을 공급했고, 그 대가로 낮은 보유세를 수십 년간 유지해왔다. 뒤늦게 정부가 공공성을 이유로 개인의 부동산을 통제할 명분은 작았고, 토지공개념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남겨진 것은 주택보유라는 과업 달성에 실패한 무주택 가구들이었다. 높아진 주택가격 탓에 (특히 수도권에서) 한 번 주택 구매에 실패한 가구가 주택을 마련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주택을 소유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각자도생은 가정의 몫, 좀 더 구체적으로는 여성의 몫이 됐다.
집값을 지키고 싶었던 여자들의 '아수라'
〈위대한 방옥숙〉의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여자 버전 아수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부동산 관련 이권 다툼을 그린 느와르 영화 《아수라》와 〈위대한 방옥숙〉은 선역과 악역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아수라》가 진짜 나쁜 놈들만 나오는 이야기라면, 〈위대한 방옥숙〉에는 그다지 선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악하지도 않은, 적당히 속물적이며 적당히 바보 같은 아줌마들이 나온다.
이는 어쩌면 ‘부동산’이라는 소재의 특수성에서 나오는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부동산 투기가 나쁜 것임을 알고, 부동산 가격이 안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동산 투기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최소한 ‘내 집값’이 떨어지는 게 유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부동산은 조금은 속물적이고 조금은 도덕적인 우리의 양면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소재다. 결국 토지와 주택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사회적 합의도 양면성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글: 에디터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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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독을 권합니다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는 여성들이 어떻게 가정 내에서 주택실천을 수행해왔는지 설명합니다. 저자 최시현 박사는 중산층 여성들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성들 사이에서 ‘가정 내에서 유능한 가정주부라면 당연히 집을 마련하고 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공유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는 ‘가족을 위한 일’로 정당화되고,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겨지지만, 어느 날 공적 영역에서 불법과 도덕 논란이 제기되면 그 책임 역시 여성의 몫이 됐다는 것입니다.
김명수 전남대 교수의 『내 집에 갇힌 사회』는 1970년대 이후 한국 부동산 정책이 민간의 자본을 동원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같은 정책이 한국의 주택 소유를 어떻게 '정상'화하는지 설명합니다. 김명수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주거 현실을 '생존주의 주거'라고 설명하면서, '한국인은 살기 위해 집을 사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집을 산다'고 비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