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국회] (2) 점잖은 국회, 어떻게 만들지?

입법 지연 및 국회 폭력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한 ‘국회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012년, 19대 국회에서 이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일명 국회선진화법이다. 폭력적이고 법안 처리가 더딘 ‘후진 국회’에서 벗어나 선진화된 국회로 나아가자는 의미가 담긴 명칭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어떻게 국회를 선진화시킨다는 걸까?

국회선진화법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1) 입법 과정에서 다수당 독주 방지

대부분의 국회폭력은 소수당이 다수당의 입법 강행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다수당이 제대로 된 합의 과정 없이 입법을 밀어붙이면 소수당에겐 이를 막을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폭력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방지하고, 비폭력적이고 합법적인 입법 지연 수단을 마련했다.

  •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 엄격화

    국회의장 직권상정(직권상정)은 국회의장이 직접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법안은 관련 분야의 상임위원회(상임위)에서 심사를 받아 의결을 거쳐야만 본회의에 올라갈 수 있다. 직권상정될 경우 국회의장은 상임위에 심사 기간을 지정할 수 있고, 기간 내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해당 안건은 바로 본회의에 올라간다.

    본래 직권상정의 목적은 상임위가 이유 없이 심사를 미루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본회의에서 법안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쓰였다. 특히 다수당에서 원하는 법안은 다수결 투표를 하는 본회의에 상정되기만 하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수당 소속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이용해 본회의에 올려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심사 기간을 아주 짧게 지정해서 심사를 하지 못하고 본회의에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직권상정 전체 사례 중 94%의 심사 기간은 1일 이하에 불과했다.

    이에 국회선진화법은 직권상정이 가능한 상황을 엄격히 제한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정도의 국가비상사태,  또는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 간 직권상정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경우로 대폭 축소했다. 특정 법안의 입법을 목적으로 직권상정을 사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 무제한 토론제도(필리버스터)

    무제한 토론제도는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행위다. 어떤 안건에 대해 장시간 토론을 진행해 그에 대한 본회의 표결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무제한 토론을 하기 위해선 재적의원(현직 전체 국회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무제한 토론의 종료를 원하고, 무기명 투표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종료에 찬성해야만 무제한 토론을 중단할 수 있다.

2) 입법교착 방지

국회에서 대부분의 법안은 여야의 합의를 거쳐 원만히 통과된다. 발의 이전부터 국회 내에서 활발한 협의가 이뤄지는 경우에 그렇다. 한편 어떤 법안에서는 정당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로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법안들이 그러하다. 이런 법안을 쟁점 법안이라고 한다. 쟁점 법안을 둘러싼 정당 간 갈등이 심각할 경우,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입법 과정이 멈춰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입법교착 상태라고 한다.

국회선진화법은 입법교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몇 가지 두고 있다. 입법교착은 국민 삶과 밀접한 사안에 대한 논의를 막는다는 점에서 더 나은 국회를 위해 해결돼야 할 문제인데, 국회선진화법에서 다수결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직권상정 요건 엄격화와 필리버스터가 입법교착을 심화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읽기 전에! 헷갈리는 의회 용어
회부: 안건 심의를 위해 상임위에 보내는 것
부의: 회부된 안건의 심의를 마쳐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표결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
상정: 부의를 거친 안건을 표결하기 위해 상임위나 본회의에 올리는 것

의안자동상정제

상임위에 의안이 회부된 경우, 의안숙려기간이 지난 뒤에도 상임위에서 상정되지 않으면 의안숙려기간 후 30일이 경과한 뒤 최초로 개회되는 상임위 의사일정에 상정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의안이 상임위에 상정되기까지의 기간을 줄이는 것이다. 18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된 후 상임위에 상정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87.8일이었다. 의안자동상정제에 따르면 상임위 상정기간이 여기서 4개월 정도 단축된다.

안건신속처리제(패스트트랙)

법안이 신속처리 대상안건으로 지정될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조건 본회의에 상정되게 하는 제도다. 지정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위원회 심사를 마쳐야 하고,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에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상임위 중 하나)에 자동으로 회부된다. 법사위에서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쳐야 하며, 역시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에는 본회의에 자동으로 회부된다. 그리고 본회의에 회부된 지 60일이 지나면 그 후 처음으로 열리는 본회의 의사일정으로 상정된다. 이렇게 되면 최대 330일 안에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등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의 본회의 자동부의제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의 심의를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 2일)까지 마쳐야 한다. 하지만 이 기간은 18대 국회까지 대체로 지켜지지 않았다. 야당이 예산안 심의를 쟁점 법안 처리의 볼모로 잡아왔기 때문이다. 예산안 심의는 원내 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이뤄진다. 이때 예산안과는 무관한 법안 처리나 기타 정치적 쟁점을 자기 정당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예산안 심사를 조건으로 내거는 식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이를 막기 위해 예산안 및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했다. 헌법상 예산안 의결기한의 48시간 전인 11월 30일까지 국회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12월 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선진화법의 효과는 어땠을까?

국회 내 폭력사태는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확연히 감소했다. 법안이 시행되기 시작한 2012년부터 현재까지 동물국회가 재연된 것은 단 두 번이다. 동물국회를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했지만 폭력 방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에는 1년에도 몇 번씩 동물국회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에는 직권상정 요건 제한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제17대 국회와 제18대 국회에서 발생한 국회폭력 사태의 상당수는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두고 일어났다. 입법교착→다수파 직권상정 감행→소수파 반발→국회폭력으로 이어지는 건이 대다수였는데, 직권상정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국회폭력의 불씨가 사라진 것이다. 실제로 제19대 국회 들어서 직권상정이 이뤄진 것은 1건에 불과하다.

국회선진화법에 폭력행위를 직접적으로 막는 내용이 포함돼있기도 했다. 국회폭력 사태에서는 국회의장석과 위원회·위원장석을 점거하는 일이 왕왕 발생했다.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전에도 이러한 행위는 징계 대상이었지만, 당 차원에서 국회의원 징계를 심사하는 윤리특별위원회를 거쳐야만 본회의에서 징계가 처리될 수 있었다. 국회선진화법은 이런 폭력 행위에 대한 징계가 바로 본회의에서 처리되도록 해 징계가 더욱 확실히 내려지도록 했다. 또한 다른 국회의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시켰다.

국회선진화법의 부작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의 일처리를 까다롭게 하면서 오히려 입법교착 및 지연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동물국회를 막으려다 무력하고 정적인 ‘식물국회’를 만들었다는 거다. 특히 법안이 도입된 직후인 19대 국회에서 당시 새누리당의 불만이 높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정부조직 개편을 위해 내놓은 정부조직법이 국회에 제출된 지 51일이나 지난 후에 통과되면서 비판이 거세졌다. 직권상정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패스트트랙 등 일부 법안은 국회의원 5분의 3이 찬성해야만 통과할 수 있게 되면서 입법 지연을 해결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이 입법교착 및 지연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는 반박도 있다. 한국 국회는 기본적으로 교섭단체의 협의를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이기에 입법 지연이 발생하기 쉽다는 주장이다. 언제 어떤 법안에 대해 얘기할지 정하는 의사일정부터가 모든 교섭단체가 동의해야만 확정된다. 의안자동상정제 등을 통해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법이 처리되지 않는 상황을 방지했어도 기본적으로 법안 처리가 밀리기 쉬운 것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한편 국회선진화법에서 주목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입법교착 및 지연보다 국회의 권한 제한과 근본적 목적을 흐리는 것을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문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목적 중 하나는 합의가 어려워서 생기는 지연과 미결정 상태를 막는 것에 있다. 하지만 기한 내 처리에 치중하다 보면 국정 사안을 검토하는 국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산안 본회의 자동부의제도의 경우 국회가 심사를 마치지 못해도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기에 국회의 재정통제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

국회의 근본적 가치인 토론과 숙의가 존중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입법교착을 없애는 데만 치중하다 보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법안이 통과될 수도 있다.

이렇듯 국회선진화법의 효과를 두고는 평가가 나뉘지만, 확실한 건 국회선진화법의 도입만으로는 성숙한 국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검수완박’과 관련해 국회폭력 사태가 다시 발생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번 동물국회도 국회선진화법 이전 사례들과 발생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수당이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자 소수당이 저항하며 물리적 충돌까지 일어난 것이다.

현 국회의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심지어 국회선진화법의 제약을 회피했다. 국민의힘 측이 반발하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나서자, 일명 ‘회기 쪼개기’로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켰다. 필리버스터 대상이 된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자동으로 상정돼 표결되는데, 필리버스터가 있는 회기의 종료 시점을 당일 자정으로 잡아 필리버스터를 사실상 무력화시킨 거다. 앞서 설명했듯 필리버스터 종결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5분의 3이 동의해야 하는데, 민주당만으로는 그 숫자를 채울 수 없어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짧은 회기가 통과된 것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국회선진화법에 구멍이 있었기에 이런 전략이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완벽한 제도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만큼 제도만으로 국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결국 변해야 하는 것은 국회의 문화다.

그렇다면 국회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

우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의 본래 취지를 거스르지 않는, 성숙한 정당의 태도가 필요하다. 이번 ‘회기 쪼개기’ 건에서 볼 수 있듯이 제도를 도입해도 이를 무력화하는 ‘꼼수’ 행위들이 잦기 때문이다.

국회 내 갈등은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의 대립이 아닌 반대를 위한 반대, 정당 간 권력 다툼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국민의 이익이 아닌 정당의 이익을 기준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다. 해당 사안이 일반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논의될 필요가 있는지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방식의 합의 문화가 자리잡는 거다. 대립하는 의견 사이에서 합의를 도출하려면 결국 양측 모두 어느 정도는 양보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정치 문화는 양보보다 무조건적인 강대강 대립에만 의존하고 있다. ‘나는 무조건 옳고 너는 무조건 틀리다’는 태도로 협의에 나서는 것이다. 어떤 건이든 결정 사항에 따라 손해를 보는 입장은 생길 수 있다. 그런 입장에서 불만을 가지고 미온적인 자세를 보일 수는 있지만, 손해를 본다고 해서 논의 자체를 거부할 경우 해결을 미루게 되면 문제는 심화될 뿐이다. 국회에서 다뤄지는 안건은 문제 해결을 위해 올라온 만큼, 결정을 목표로 협의에 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국회의원들이 소속된 정당과 무관하게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당은 선거를 중심으로 활동하기에 선거 승패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움직이지만, 소속의원들은 이러한 차원에서 벗어나 의회에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 안에서도 상대 당을 ‘이기기 위한’ 선택을 내리게 되고, 이는 여야의 갈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여당과 여당 소속의원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당이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회를 운영하려 하면서 법안을 과도하게 밀어붙이거나 야당과 대결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야가 자율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때 국회가 성숙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는 시각이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지 어느덧 10년이 됐지만, 아직 진짜 ‘선진화’를 위해 갈 길은 멀어보인다. 언젠가는 국회의원들이 점잖게 손 잡고 국민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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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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