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국회] (1) 국회가 몸싸움의 장으로 변질된 까닭은

지난 4월 말,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이른바 ‘검수완박’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당시 국회 상황을 전한 보도들에 따르면,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도록 박병석 전 국회의장의 이동을 막으려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국회 직원 간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욕설과 고성까지 오가는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국회가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썼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8대 국회에서는 몸싸움을 넘어서서 쇠사슬, 해머, 전기톱 같은 연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8년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에서 회의장 출입문을 걸어 잠근 채 한미FTA 비준안을 단독 처리하려고 했다. 그러자 FTA 비준에 반대하던 민주당 의원들은 해머를 휘둘러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2000년대 이후 지속된 국회 내 폭력 사태를 보고 있자면 의문이 든다. 국회는 원래 이렇게 싸우면서 일을 하는 걸까?

국회에서는 어떤 식으로 정당 간 합의가 이뤄질까

국회에서는 정당 간 원활한 합의를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크게 상임위원회에서의 토론과 원내 교섭단체 간 협의를 살펴보자.

1) 상임위원회(상임위)에서의 토론

하나의 법안은 최종적으로는 본회의에서 표결을 거쳐 통과되지만 그 이전에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본회의 자리에서 다수결에 따라 법안 통과 여부가 곧바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여러 차례 쟁점 사안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우선, 간단히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① 국회의원 10인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법안 발의가 가능하다.

② 발의된 법안은 심사를 위해 소관 상임위로 보내진다.

③ 상임위원회가 법률안을 검토하고 찬반토론으로 법률안의 본회의 상정에 관한 의사를 결정한다.

④ 법제사법위원회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마친 법률안이 기존 법 체계와 충돌하는지, 법안에 적힌 문구가 적정한지 심사한다.

⑤ 본회의에서 질의와 토론을 거쳐 의사를 결정한다.

우리나라 국회는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입법과정과 같이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법률안 심의가 이뤄지는 의회 운영 방식을 일컫는다. 상임위에 소속된 의원들은 법률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논란이 되면 수차례 회의를 갖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심의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조정될 여지가 보장된 것이다.

상임위 및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구성도 정당 간 균형과 견제의 원칙을 따라 이뤄진다. 통상적으로 17개의 상임위원장은 의석비율에 따라 정당별로 배분한다. 집권 여당이나 다수당의 일방적인 입법 처리를 막을 수 있도록 법사위원장은 국회 내 두번째로 의석 수가 많은 정당(원내 2당)의 몫으로 배정된다. 법사위는 모든 상임위 통과 법안이 본회의로 넘겨지기 전에 거쳐야 하는 위원회인 만큼 그 권한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2) 교섭단체 간 협의

하지만 실제 쟁점 법안에 대해 정당 간 합의를 도출하는 데는 상임위에서의 토론 못지않게 교섭단체 간 협의의 역할이 크다. 교섭단체란 의원들의 의사를 사전에 통합하고 조정하기 위해 구성하는 단체를 말한다. 소속 국회의원들이 정당의 기조를 따를 수 있게 의사를 종합하고, 다른 교섭단체와 의사소통을 통하여 국회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국회에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 교섭단체 대표의원은 일반적으로 정당의 원내대표가 맡는다.

민주화 이후 국회엔 원내 교섭단체 중심의 합의제 관행이 자리잡았다.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사실상 국회는 대통령이 요구하는 정책에 별다른 이견 없이 입법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만 해왔다. 대통령의 강한 권력에 국회가 종속적으로 기능하는 상황에서 다수결 제도는 집권 여당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 수단으로 쓰여왔고, 이로 인해 민주화 이후 국회 개혁 방안으로 합의제 성격을 높이는 식의 국회 개혁이 이뤄졌다. 국회의장단 선출 및 상임위 구성과 임시 국회의 소집, 본회의 일정을 정하는 것까지 교섭단체의 협의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특히 법안을 두고 원내 정당 간 이견이 첨예할 때 의견을 조율해 절충안을 도출하는 것도 교섭단체 간 협상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여야 원내대표 내일 회동…중대선거구 담판 시도”와 같은 헤드라인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심지어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이더라도 원내정당 간 갈등이 심하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원내대표 회동을 통해 극적으로 법안 통과가 합의되면 소관 상임위에서 급히 논의를 마쳐 본회의에 오르는 상황도 생긴다. 한편, 정당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입법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 국회의장이 중재자로 나서 원내대표 간 만남을 주선하거나 중재안을 제시하는 등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결국 몸으로 싸우는 이유

법안이 본회의에 이르기 전까지 상임위와 원내교섭단체 간 합의처럼 정당들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데, 왜 폭력 사태가 벌어질까? 첫 번째 원인은 국회의 의사 결정 방식인 다수결 제도의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1) 다수결에서 쉽게 배제되는 소수 의견

법안을 토의하는 과정에서는 상임위와 교섭단체의 합의가 중요하지만, 국회에서 최종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식은 국회의원 300명의 다수결 표결이다. 일반 법안은 본회의에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의원 과반수가 찬성, 즉 최소 75명 이상의 의원들이 찬성하면 통과될 수 있다.

모든 법안은 본회의 표결에 따라 입법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국회에서 의석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다수당이 입법에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다수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의석수를 차지한 정당인 소수당의 의견은 다수결 표결에서 쉽게 배제될 수 있다. 현재 21대 국회에서는 169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 114석을 가진 국민의힘이 소수당이다.

어떤 법안에 대해 다수당은 찬성, 소수당은 반대를 하고 있고 법안이 본회의로 넘어가기 전까지 두 정당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의견 대립이 극심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다수당이 의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본회의 표결은 다수당의 찬성으로 법안이 통과되며 끝날 것이다. 재적의원의 과반이 넘는 169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일반의결은 물론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계엄해제 요구 등 특별의결까지 다른 정당과의 논의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

이번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둘러싼 몸싸움도 다수당의 입법 강행을 소수당이 막으려는 와중에 발생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이후 검찰개혁 완성을 내걸며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추진했다. 국민의힘과 검찰이 거세게 반대하고, 시민사회나 법조계에서도 형사사법체계 전반을 재조정하는 중대한 사안인만큼 폭넓은 의견수렴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종료 전에 법을 통과시키고자 일방적으로 입법을 처리하려고 했고, 국민의힘은 본회의가 열리지 않도록 국회의장실을 점거하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다수당의 법안을 밀어붙일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있다. 바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다. 직권상정은 상임위원회의 법안 심사 기간을 국회의장이 정하는 권한이다. 관례적으로 국회의장은 여야 협상을 통해 다수당(원내 1당) 의원이 맡았다. 따라서 다수당이 법안을 본회의로 빠르게 넘기고 싶을 때 국회의장이 법안의 심사 기간을 하루 정도로 짧게 정해 위원회의 법안심사권을 무력화시켜 소수당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도 본회의로 보내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본회의 표결과 직권상정 앞에서 소수당이 법안 통과를 저지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방식이 없었다. 다수결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는 보조적인 제도가 미흡했던 것이다.  따라서 소수당은 법안 통과를 최대한 막기 위해 국회의장이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의장실을 점거하거나, 본회의장의 문을 물리적으로 막는 식의 방법을 시도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다수당과의 고성 다툼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법안 통과 의지가 강한 다수당이 소수당과의 폭력적인 다툼을 감수하면서도 법안 통과를 강행하는, 소위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 동물 국회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 양극화된 정당 정치와 자율성이 부족한 국회의원들

동물 국회의 또 다른 원인은 한국의 정당, 특히 여당과 야당을 번갈아 차지하고 있는 두 정당(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극심하게 양극화되어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며, 의견을 두고 갈등하다 타협하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건강한 국회의 작동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문제는 정당들이 실체적인 의견 차이로 대립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국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정당은 이념이나 정책 방향에서 차이를 보이기보다 서로를 정치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용납할 수 없는 적으로 두는 경향이 짙다. 정당들이 법안을 두고 토론할 때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국민에게 더 필요한 것, 사회에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주장하고 이견을 절충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리다'라는 식의 다툼이 진행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경제나 사회 정책처럼 정당 간 이념에 따른 입장 차가 발생하기 쉬운 사안이 동물국회를 유발하는 쟁점이 되지 않는 모습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국회 내 폭력을 일으켰던 사안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이라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강행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국민의힘이 자신들의 의석수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저지하려 했던 선거법 개정안이 있다. 이들 모두 정당 간 이념 다툼보다는 집권여당과 야당의 기세 다툼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양극화된 정치의 기저에는 대통령과 국회 내 정당들의 관계에 따라 의원들의 자율적인 활동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 우선 국회의원들 대부분은 정당에 소속되어 있고, 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공천에 따라 자신들의 다음 정치 행보가 결정되므로 소속 정당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국회 내 정당들 중 하나는 대통령이 속해 있는 집권당이다. 우리나라는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대통령이 집권당의 총재(당대표)를 겸하며 실질적으로 집권당을 장악해왔다. 이에 따라 집권당은 대통령에 종속되고, 야당은 차기 대선의 경쟁자로서 현 대통령과 집권당을 반대하는 구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입법 활동을 해야 할 국회 내 정당과 의원들이 대통령을 둘러싼 여야 간의 거대한 정치적 대립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의원들이 상대 정당 의원들과 자율적으로 대화하며 타협할 여지를 축소시켰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입법과정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은 망치와 쇠지레가 등장하는 국회의 폭력충돌이 예기치 않게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국회 입법 과정의 핵심은 본회의 표결 전까지 의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친 뒤에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으니 의도적으로 폭력을 행하는 거다. 감정적으로 흥분해 몸싸움을 일으키는 게 아니란 뜻이다.

대개 폭력 사태를 일으킨 주체인 소수당은 법안 통과를 최대한 저지하며 다수당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고, 최종적으로 법안을 막지 못하더라도 지지자들에게 자신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폭력을 일으킨 대가로 여론의 비난을 받거나 국회 내에서 제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얻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동물 국회는 토론과 협력에 기반해 운영되는 국회의 정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2011년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던지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국회는 비합리적인 폭력을 막고 협의를 통한 의사결정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게 되었다. 바로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법의 대대적인 개정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도입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알아보자.

참고자료

[논문]

박상훈. (2020). 양극화된 정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국회미래연구원 연구보고서, 20-28
박용수. (2020). 민주화 이후 한국의 만성적 입법교착 연구, 비교민주주의연구 16(2), 57-90.
이현우・홍정. (2011). 국회 내 폭력적 충돌 원인의 상이성: 합의적 충돌, 갈등적 충돌, 저항적 충돌. 한국정당학회보, 10(2), 221-250.
전진영. (2011). 국회 입법교착의 양상과 원인에 대한 분석. 의정연구, 17(2), 171-196.
정진민. (2008). 생산적 국회운영을 위한 대통령: 국회 관계와 정당. 한국정당학회보, 7(1), 77-102.

[기사]

황금비. (2020.06.01). 원내대표 힘을 빼면 '일하는 국회'가 될까요?, 중앙일보,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9473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