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도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인구동향조사에서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습니다. 그동안 이민에 보수적이었던 한국에서도 적극적인 이민 정책 추진이 불가피해진 상황에 이르러, 정부는 이민청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체류 외국인 약 220만 명에 41만여 명의 미등록 체류자까지 합하면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인구의 5%를 넘어갑니다. OECD는 이주배경인구가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합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주배경인구 중에는 난민도 포함돼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2년에는 아시아 국가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 자체적으로 난민심사를 시행해오고 있는데요. 1994년부터 대략 6천명 이상의 난민이 우리 사회에 정착해왔습니다.
이 중에는 2021년 일명 ‘미라클 작전’을 통해 입국한 391명의 아프간 특별기여자도 있습니다. 어느덧 이들이 한국에 입국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왔을까요? 정부는 왜 이들을 ‘특별기여자’라고 명명했을까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울산 정착기
2021년 8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자 그동안 아프간 정부에 협력해오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위험에 빠졌습니다. 이 중에는 우리 정부의 아프간 재건사업을 도왔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탈출 작전을 이례적으로 수행하여 2021년 8월 26일에 79가구 391명을 입국시켰습니다.
이들은 충북 진천 공무원연수원과 전남 여수 해경교육원을 거쳐 약 5개월 간 직업 훈련과 언어·문화 교육을 받고 2022년 2월부터 지역사회로 흩어졌는데요. 그중 29가구 158명, 약 40%가 울산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일손이 필요했던 현대 조선소의 적극 채용 덕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주민과 아무런 소통 없이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정착을 추진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정착은 오롯이 지자체와 시민단체의 몫으로 떠넘겨졌습니다.
꼬박 6개월을 진천과 여수의 시설에서 갇혀있다가 나왔지만, 울산 주민들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인사를 해도 떠나라고 손짓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말입니다.
특히 반발이 심했던 곳은 학부모 집단이었습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 84명이 미성년자였는데, 그중 초등학생 28명이 모두 서부초등학교에 배정됐습니다. 서부초 학부모들은 이슬람 난민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며 ‘아이들이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 흡수될까 우려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었습니다. 지난 2018년 예멘인들이 제주에 도착했을 때도 학부모들의 반발이 가장 컸습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 이러한 우려는 거의 사그라졌습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울산 정책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됩니다. 그 중심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노옥희 울산 교육감이 있었다고 실무자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울산교육청은 학부모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대처해 나갔습니다.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 사이의 ‘소통 협의체’를 만들어 거의 매일 회의를 진행하며 갈등을 조율했습니다. 노옥희 교육감은 이렇게 학부모들을 설득했습니다. “낯선 데에서 새로운 배움이 일어납니다. 서로 같은 사람들끼리 있으면 배움이 안 일어납니다. 한국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등교 첫 날, 노옥희 교육감은 11살 아스마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등굣길에 올랐습니다.
아프간 학생들은 첫 학기 특별반으로 분리돼 한국어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고, 다음 학기부터 한국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금세 친구가 됐습니다. 서부초의 노력으로 아프간 어머니들과 학부모들과의 만남도 마련되었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아프간 특별기여자들과 울산 주민들과의 만남이 지속되며 점차 벽이 허물어졌고, 특별기여자들은 1년 사이 울산 지역사회에 녹아들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6명의 아프간 학생들은 울산과학대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특별기여자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며 한국 생활에 대한 만족을 드러내고 있고, 주민들도 자연스러운 이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울산 정착 1주년을 맞이해 특별기여자들이 지역사회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감사패와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이주배경주민들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울산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를 먼저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시사IN의 김영화 기자는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울산 동구만의 것이 아니며, 시작은 외지인이지만 그 끝은 한국인들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특별기여자’라는 명칭에 대해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울산 정착 사례는 성공적이어보이지만, 그런 평가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프간 난민들이 여론의 큰 반발 없이 안착할 수 있던 배경에는 정부가 부여한 ‘특별기여자’라는 명칭이 있었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난민’입니다. 만약 정부가 ‘아프간 난민 구출 작전’을 수행해 ‘난민’들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겠다고 했다면 지금과 같은 분위기였을까요?
2018년 예멘 난민 약 500여 명이 입국했을 때 거센 반발을 기억하실 겁니다. ‘가짜 난민’ 논란도 있었고, 근거 없는 이슬람 혐오도 만연했습니다. 2018년 예멘 난민과 2021년 아프간 난민은 상황이 다른 걸까요? 혹자는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프간 난민은 우리 국가를 도왔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요.
그렇다면 예멘 난민은 보호할 책임이 없는 걸까요? 대한민국은 유엔 난민협약가입국이자 자체적으로 난민법을 시행하는 국가이기에, 난민이 입국했을 때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난민’과 ‘특별기여자’는 확실히 어감이 다릅니다. 활동가 단체들은 ‘특별기여자’라는 명칭을 준 게 ‘정무적 여론관리’라고 비판해왔습니다. 국민들의 인식에는 ‘보호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난민’ 보다는 우리와 협력해 ‘보호받을 자격’을 얻은 ‘특별기여자’가 더 무난히 수용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은 보호받을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날 때부터 지닌 우리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난민’이든, ‘특별기여자’든, ‘탈북민’이든, ‘대한민국 시민’이든,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국가는 배경을 막론하고 개인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적극적 이민 정책을 고려하는 현 시점에서, 난민을 포함한 이주배경주민들을 어떻게 인식할 지에 대한 더욱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들을 나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동료 시민으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자격’을 얻어야 나와 함께 살 수 있는 객체로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향후 우리 미래의 격이 달라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