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온 난민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영토는 산둥반도입니다. 맥주로도 유명한 칭다오시가 있는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산둥반도 웨이하이 항에서 인천항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00~350km에 달하는데요, 이 거리를 혼자서, 그것도 제트스키로 건너온 청년이 있습니다. 중국 국적의 조선족 인권운동가 권평입니다.

©조선일보

권평은 연료가 든 드럼통 5개를 제트스키에 매달고 웨이하이 항에서 출발했습니다. 나침반과 망원경에만 의존해 14시간을 항해했고, 지난 8월 16일 밤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중국으로부터 출국 금지 조치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권평은 평소 중국 정부의 정치 검열 제도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유학 당시 천안문 시위 추도식에 참석했고, 2016년 중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구금된 인권변호사들의 석방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9월, 시진핑 주석을 풍자하는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화근이 됐습니다. 중국 정부는 ‘국가 전복 선동죄’로 권평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해외에서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FreeKwonPyong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을 풍자하는 의미의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찍은 권평. ©권평 트위터

2019년 만기 출소한 이후에도 중국 당국의 감시는 이어졌고, 권평은 자유와 인권이 박탈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9년 8월부터 망명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출국 금지 조치와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가 겹치며 정상적인 루트를 통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기다림 끝에 코로나 방역 조치가 완화되자, 그는 마침내 탈출을 강행했습니다.

권평은 한국에 도착하기만 하면 일이 풀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한국은 난민협약 가입국이자 자체적으로 난민법을 시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인천 갯벌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직접 119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인천항에 도착했다. 비자와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데, 출입당국에 신고하고 싶지만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우택 의원실에서 제공한 119에 구조요청 당시 녹취록 ©중앙일보/정우택의원실

엇나간 해경의 대처

해군은 레이더망으로 권평을 포착해 해경에 알렸습니다. 해경은 권평을 찾지 못하다가 권평이 스스로 한 119 신고를 듣고서야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권평을 긴급 체포했습니다.

권평은 여권과 비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본인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밀입국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민당국에 직접 신고하려 했습니다. 국정원, 해경, 해군의 합동수사 과정에서는 지속적으로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습니다. 따라서 난민법에 의하면, 해경은 권평을 출입국외국인청으로 인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권평은 한국에 도착한지 나흘 만에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해경은 언론에는 합동수사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난민 신청 여부를 부인했습니다.

권평을 ‘밀입국자’로만 본다면, 해경은 그를 체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엔 난민협약 제31조는 ‘생명과 자유가 위협받는 영역에서 탈출한 난민에게 불법적으로 입국했다는 이유로 형벌을 과하여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난민법 또한 유엔 난민협약을 근거로 작성됐고, 이에 따르면 난민인정자는 ‘다른 법률에도 불구하고’ 난민협약에 따른 처우를 받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권평에게 징역 2년 6개월 형을 구형했습니다. 구형 이유는 따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지난 23일 인천지법의 1심 판결에서는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보통 집행유예를 받으면 구치소에서 곧바로 석방되지만, 외국인의 경우 출입국외국인청으로 인계돼 강제퇴거 명령을 받습니다. 즉, 권평은 석방 판결에도 불구하고 풀려나지 못했고 심지어 중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비슷한 판례도 존재하는데...

권평 사건에서 해경과 검찰의 일처리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권평의 사례가 이례적이기 때문에 일선에서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밀입국한 정치적 난민에 대한 처우 문제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비슷한 상황에 대한 판례까지 존재합니다.

2014년 10월, 나이지리아인 A씨는 조국을 탈출해 인천항에 밀입국했습니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폭력적인 충돌로 혼란스러웠습니다. A씨는 목사이자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가로서 정부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살해당했고, 아내와 아들은 납치됐습니다.

A씨는 본인의 밀입국 사실을 신고하고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지도 못한 채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고,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기약 없이 수용돼 출국당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에 A씨는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5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판결을 담당한 하태헌 판사는 “난민 인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향후 인정 가능성이 있다면 신청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본국에서의 박해를 주장하는 A씨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면 강제퇴거 명령은 가혹하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사와 상담중인 A씨. ©공익법센터 어필

현재 한국의 출입국항과 각 관할 출입국외국인청에는 누구나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권평과 A씨는 이를 믿고 난민 신청을 하려 했지만, 그 권리가 거부되어 불합리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명백히 존재하는 난민법이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겁니다.

같지만 다른, 정치적 난민과 탈북민

혹자는 한국이 정치적 난민 수용 경험이 부족해 이러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똑같은 정치적 난민인 탈북민을 수용하는 제도는 매우 잘 갖춰있고, 경험도 풍부합니다.

탈북민과 다른 국가에서 온 난민 모두 정치적, 종교적 탄압을 피해 이주해 왔습니다. 하지만 탈북민은 난민과 완전히 다른 체계로 다뤄집니다. 탈북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헌법은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북한 주민과 탈북민은 법리적으로 우리 국민입니다.

밀입국한 탈북민들은 곧바로 국정원 조사를 거쳐 보호 결정을 받습니다. 지난 5월, 북한 주민 9명이 가족 단위로 어선을 타고 넘어왔고, 10월에도 일가족 4명이 목선을 타고 동해로 넘어왔습니다. 이렇게 밀입국한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으로 귀순 의사를 밝히면 특별한 어려움 없이 정착 과정을 밟습니다.

반면 난민의 경우, 밀입국 후 조사 과정에서 난민 신청을 요청해도 절차를 밟는 경우가 드뭅니다. 난민법에 따르면 밀입국한 외국인이 난민임을 호소하고 난민 신청 의사를 밝힐 경우, 그리고 조사 당국이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충분할 경우 관련 절차를 밟게 해주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요.

원인은 밀입국 외국인이 난민일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법무부의 태도입니다. 난민 신청 의사를 밝히면 난민인정심사에서 회부 결정을 받아야 합니다. 회부 심사란, 정식 난민 심사를 받기 전, 신청자가 한국에 남아서 난민 심사를 받는 것을 허락할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국가에서 불회부율이 10%가 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불회부율은 50%가 넘습니다.

A씨의 경우 그의 사연을 진지하게 듣거나 조사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권평의 경우 그의 활동이 외신에서도 많이 다뤄졌음에도 정치적 난민이라는 호소가 묵살당했고, 왜곡됐습니다.

한국은 탈북민, 즉 ‘북한 출신 난민’ 보호에 매우 적극적입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탈북민 강제 북송은 심각한 인권 유린”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북한 출신이 아닌 정치적 난민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극적입니다.

11월 27일 국회에서 ’탈북민 강제송환 중단 촉구 결의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는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과 시민단체 ©서울뉴스통신

석방 후에 남은 문제들

다행스럽게도 권평은 지난 28일 석방됐습니다. 권평이 중국에 있을 때부터 인권활동을 통해 교류해오던 이대선 활동가와 공익법센터 어필의 자문이 컸습니다. 이대선 활동가는 상황을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실에 알렸고, 의원실은 법무부와 소통해 권평이 특별보호 해제를 받아 석방될 수 있도록 설득했습니다.

석방되는 권평을 맞이하는 이대선 활동가 ©이대선

하지만 초반 대처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해경은 출입국사무소로 인계했어야 할 일을 검찰로 송치했고, 석방 또한 유력 국회의원이 개입해서야 이뤄졌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국가의 정치적 난민이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민 심사조차 거부된 채 공항 등에 방치되는 사례가 반복해서 발생했습니다. 최근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징집을 거부하며 망명해 온 청년들의 난민 신청을 거부한 일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난민 제도는 이런 허술함을 용인받을 만큼 새롭고 낯선 것이 아닙니다. 유엔 난민협약 시행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고, 자체적 난민법은 10년 넘게 시행 중입니다. 심지어 한국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자체적 난민법을 시행한 나라입니다. 즉, 한국의 난민 수용 이슈는 역량과 제도의 부족함이 아닌 철학과 태도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