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당하는 정치인' 천하람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애증의 인터뷰> 여섯 번째 주자는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이다. 그는 대구 출신 변호사에서 순천의 보수당 위원장이라는 ‘혁신'의 길에 기꺼이 들어섰다. 천하람 위원장의 눈을 통해 새 시대의 보수와 지방정치라는 두 가지 의제를 살펴봤다.
천하람이 정치를 보며 느끼는 감정
❤️ 애(愛) : “나는 정치가 여러 사람을 알게 되어서 좋다”
“제가 살면서 순천 사람을 이렇게 많이 만날 수 있었을까요. 제가 변호사로 살았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그냥 단순히 만나는 게 아니라, 알게 돼요. 이 사람이 뭘 원하고, 정치인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를요. 그게 제 삶의 지평을 확장시켜줬어요. 지역, 세대, 직업적으로요.”
💔 증(憎) : “나는 정치가 여의도에 갇혀있어서 아쉽다.”
"여의도에서 20년씩 정치를 해도 시민들이 몰라요. 인지도의 문제라기보다 그 사람들이 단 한 가지도 국민들에게 화제가 되는 아젠다를 못 던졌기 때문이에요. 그때그때 여의도에서만 관심 있는 문제를 너무 많이 다루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 각오 : “나는 설득당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정치인은 항상 회의에 들어갈 때 아젠다나 포지션을 가지고 들어가요. 시민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열린 마음을 가지고 회의실에 들어가요. 늘 설득당하기만 하면 무능력한 정치인일 것이고, 저도 누군가를 설득할 때가 있겠지만 우선은 마음을 열고 있어요. 진영도 넘나들고요. 보수에서 자유, 자유 얘기하는데 그런 면에서 저는 자유로운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진영이 싫어하는 것도 좀 하고요. 욕 좀 먹으면 어때요.(웃음)”
❤️ LOVE
정치인이 되시기 전엔 정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정치를 하고 싶었어요. 나대는 거 좋아하고 ‘관종’이었고, 초등학교 때도 "장래 희망이 뭐야?" 하면 "대통령입니다"하는 꼴 보기 싫은 친구들 있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변호사도 사실은 정치하기 좋은 직업이라서 고른 면도 있었어요. 변호사 일도 좋아하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 변호사는 개별 사건을 다룬다면 정치인은 사회 전체를 생각할 수 있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창의적인 직업이에요. 그래서 저는 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변호사들의 정치계 진출이 많은 게, 개별 사건을 다루다 보면 “법이 뭐가 이렇게 돼 있어. 내가 이걸 법을 만들어도 이거보다 잘 만들겠다" 싶은 때가 많아서인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고. 지난 총선 이전에 신진정당 창당 붐이 있을 때 저도 창당하겠다고 설치다가 미래통합당에서 보수 정당 뭉치는데 뭘 창당이냐? 하고 꼬셔서 홀라당 넘어왔죠. 미래통합당에서 총선 출마하면서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창당을 준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실제로 창당을 하진 못했고요. 준비한 게 조국 사태 이후였어요. 조국 사태를 겪고 보니 민주당도 답이 아닌 것 같다면서 ‘프로젝트 2040’이라고 하는 모임이 생겼어요. 초당파적 모임이었는데, 그중 보수적인 입장이 강한 친구들만 따로 빼서 ‘젊은보수’라고 하는 모임으로 창당 준비를 했죠. 당시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호남에서도 인정받는 멀쩡한 보수 정치를 하자"였어요.
프로젝트 2040의 문제의식은 기존 정치의 무능력함과 부도덕함이었어요. 국민 삶과 직결된 이슈를 해결하지 않는 거요. 그게 가성비가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죠. 언론이 열심히 정책 개발하는 것보다 현안에 대해서 말 한마디 재밌게 하는 것에 집중해주니까요.
지금도 변호사로 일하고 계신데, 법조인의 일과 정치인의 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두 집단의 분위기 차이가 있을까요?
법조계는 틀이 짜여 있고, 정치는 싸우는 일인만큼 야성이 있어요. 법조인이 기본적으로 과거의 일에 대한 평가를 두고 싸운다면, 정치인은 미래의 설계자에요. 제 생각에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법조인의 티를 빨리 벗어야 돼요. 변호사나 고위 판검사 출신이 정치하는 게 아주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전환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변호사는 그나마 낫달까요?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설득하는 직업이에요. 유리한 판결을 해 달라고 판사 검사를 설득해야 하죠. 판검사는 판단을 내리는 직업이고요.
지금 정치계는 법조인 구성 비율이 너무 높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저는 그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의회는 법을 다루는 곳인데, 법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법을 만드니까 ‘개판’이 나는 것도 있어요. 그러니 법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해요. 그래서 변호사를 한 1~2년 정도 하다가 정치권에 들어오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법률적인 마인드는 가지면서 법조인의 습성에 너무 젖어들기 전에 정치권으로 나오는 거죠. 여하튼 법률 지식, 특히 의회의 역할에 대한 헌법적 사고는 꼭 필요해요. 저는 그래서 법조인 비율이 높은 것은 괜찮지만, 고위 판검사나 변호사로 오래 생활했던 사람들이 인생 이모작 하려고 자기 명예를 위해 국회의원 한번 해보려는 건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법조인들이 정치에 많이 도전하는 건 권장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호남 얘기로 넘어가볼게요. 그동안 계속 대구, 대도시에 계셨고요. 다음에도 고대로 가셔서 서울에 계셨는데요. 호남에서 일하시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너무 많죠. 대도시와 중소 도시의 차이가 저는 되게 크다고 봐요. 시골에 진짜 빈 집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시골에 애가 진짜 없는 줄도 몰랐고, 청년 회장님이 실제로 60대인지도 몰랐어요. 재밌는 건 순천에서는 제가 누구랑 밥을 먹었다고 하면 그다음 날 사람들이 막 알아요. 서로가 서로를 아는 사회라는 게 저는 되게 재미있고요.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아주 빠르게 아주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 입이 이렇게 무섭구나라는 걸 더 새롭게 느낍니다. 대도시에서 그 역할은 사실 매스미디어가 다 담당하는데, 정말 입소문이라는 게 있어요.
호남 주민들은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혹은 산업화에서 소외됐던 것에 대한 서러움,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분들의 또 아쉬움이 크고, 그래서 뭉쳐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세요. 광주에서는 5월에 축제를 안 합니다. 순천, 여수 같은 데서는 부모님들 중에 ‘너 어디 가서 튀지 마라’라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여순 사건 때 워낙 많은 분들이 희생됐거든요. 광주에 5.18 때 갔었는데 전야제 날 퍼레이드를 하는데, 옆에 버스에 타고 있는 분들이 보면서 막 울어요. 그때 20대였던 사람들이 이제 고작 환갑 된 거잖아요. 다른 지역에서는 잘 모르는 아픔이 실재하는 거죠.
당협 위원장이신 동시에 또 지금 국민의힘 혁신위원도 하고 계시잖아요. 혁신위원으로서 맡으신 일이나 혹은 당에 기대하고 계신 바가 있다면?
혁신을 하자는 거죠. 제가 저희 당이나 대통령실에 대해서 쓴소리들을 할 때가 있는데, 욕도 많이 먹지만 응원 전화도 많이 받아요. 심지어는 저희 당 의원들도 ‘네가 혁신위원인데 너라도 소신 있는 얘기를 하니까 좋다’는 분들도 꽤 있어요. 호남처럼 저희 당이 약한 지역에서 당을 확장시키고 상대적으로 당에서 젊은 편인 만큼 미래지향적인 것을 하는 게 혁신위원으로서의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우리 당의 공천이 좀 더 나아져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정당이 내놓는 상품은 인물이랑 정책인데, 인물은 공천하는 것이고, 정책도 그 공천된 인물이 하는 거예요. 그러니 공천 개혁 문제, 인재 육성 발굴 부분에 대해서도 역할을 해야죠.
보수정당 분들에게 청년들의 보수화 경향에 대한 생각을 여쭤보고 싶었어요. 왜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이 보수 정당에 갑자기 호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젊은 사람들의 정당 지지 여부는 개인의 자유를 잘 캐치하는 것에 달렸다고 봐요. 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리버럴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리버럴 정당이 민주당이었죠. 근데 언젠가부터 민주당도 전체주의적, 공동체주의적으로 변했어요. 사람을 어떤 틀에 짜맞춘다고 할까요? PC논쟁 같은 것들도 그런 겁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만 해야 된다거나, 페미니즘 해야 된다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민주당이 안티리버럴한 정당이 된 거예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문제도 그런 것들이죠. 좋은 학교를 가고 싶고,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득을 추구하고 싶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 있는데, 그 욕망을 억누르는 거죠. 그것도 못마땅한데 심지어는 내로남불까지 했거든요. 젊은 리버럴들 입장에서는 "아니 얘들은 선비처럼 굴더니 심지어는 제대로 된 선비도 아니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솔직하게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보수 정당이 더 낫겠는데?"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봐요.
그 점에서 보수 정당이 민주당계 정당과 비교할 때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나요?
개발 독재 시기에는 저희가 자유와 가장 거리가 먼 정당 중 하나였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업의 자유만 강조했었어요. 젊은 사람들은 혀를 찼습니다. 왜 대기업의 자유만 얘기하고 개개인의 자유는 증진하지 않느냐는 거죠. 개개인의 자유라고 하는 어떤 아젠다를 제대로 사로잡는 사람이 우리나라 정치권에 거의 없습니다.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그나마 이준석 대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산업화도 했고 민주화도 했어요. 이제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것은 결국 개별화, 다양화, 다원화 이런 것들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민주당이나 저희 당 주류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는데, 저희 당은 최소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려 있어요.
말씀하신 개인의 자유, 다양성에는 보수에서 터부시되던 자유도 포함될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서 성소수자의 권리 같은 것이요.
그럼요. 최근에도 이슈가 됐지만 북한 방송을 볼 수 있을 자유, 그런 것들도 포함되죠. 대통령을 욕할 자유, 당론에서 벗어날 자유, 이런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부분들이 있어요. 저희 당 주류는 저항하고 있지만 이 공간이 열려 있다는 걸 저를 비롯한 저희 당의 젊은 친구들이 본능적으로 아는 거예요. 민주당 같았으면 이런 거 못해요. 민주당은 훨씬 더 엄격합니다.
지금까지 환경, 젠더 등 새로운 시대의 의제를 주도해 온 것은 진보 계열인데요. 그렇다면 보수 정당이 앞으로 그런 의제를 주도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해야죠. 혼인 외의 출산, 결혼 제도의 일부 유연화, 시민 결합(civil union)에 대해 저희도 전향적인 목소리를 내야 될 필요가 있어요. 환경 문제에서도 단순히 환경이냐 산업이냐 이런 논의를 넘어서 환경이라는 자원을 우리가 어떻게 통시대적으로 배분할 지에 관한 논의들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세계적 기준 자체가 환경 문제에 대해 답을 안 내놓고는 집권을 할 수 없게 가고 있어요. 그냥 저희는 산업 경쟁력만 얘기하고, 민주당은 환경 보호만 얘기하면서 대충 중간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만, 합리적인 방안은 아닌 것 같아요. 산업 경쟁력과 환경, 미래 자원의 고차 방정식을 나름대로 풀어내야죠.
💔 HATE
자유의 가치와 실현 방법을 두고 보수여당 내에서 노선 차이가 큰가요?
엄청 크죠.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의 생각을 바꾸긴 어려워요. 평생 그렇게 사신 분들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저희 쪽으로 흐름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희 당의 전통적인 정치인들이 내세울 수 있는 새로운 아젠다가 없어요. 반공 외치고 대기업 도와주는 걸로는 이제 안 되거든요. 새로운 보수도 기업 친화적이고 성장을 중시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분배를 버릴 수가 있습니까? 효율성을 추구하는 거예요. 똑같은 기업 친화라고 해도 대기업만 지나치게 얘기하는 것보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정부는 아주 공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하고요. 공정한 기회의 평등을 부여하자는 게 저희 보수의 기본적인 경제 관점 관념 아니겠어요? 그런 것들을 강조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진보랑도 어느 정도 겹치는 면이 있어요. 예를 들어 새로운 도전자들을 북돋아줘야 한다는 생각은 보수와 진보가 같아요. 이때 진보는 평등, 공평한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면 보수는 공정한 기회, 도전 정신, 기업가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이전보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구분이 좀 더 흐려지고 협력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이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21세기는 보수의 세기가 될 거다 이런 말도 많이 하는데요. 거대 기업들이 온라인·오프라인 시장을 모두 장악하게 되면, 진보 진영의 해답은 말 그대로 세금 많이 걷어서 나눠주자는 건데요. 물론 그게 어느 정도는 필요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국가에 대한 예속이 심해져요. 보수의 관점은 이 예속을 최소화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앞으로의 보수 정치가 그 과정에서 진보 진영과 협력할 부분도 있겠죠. 예를 들면 불평등 완화에서요. 하지만 기본적인 지향점은 달라요. 보수는 기본적으로 유토피아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정치, 직접 해보시면서 실망하신 점은 없나요?
우리가 양대 정당에 뭔가 거창한 게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잖아요? 수면 위는 사람들이 서로 욕하고 싸우는 난장판일지라도, 수면 아래에서는 정책적인 기능이라든지 어떤 싱크탱크, 전략가들이 일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특히 저희 국민의힘 같은 경우는 한 15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집권 세력인데, 뭔가 더 거창한 게 있겠지 생각하세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없어요. 이렇게 정치의 민낯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이거 이래서 되는 건가, 나라가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고,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나도 잘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해요.
정치의 민낯이라는 게 어떤 걸까요?
정치인들끼리 티격태격하면서 싸울 때 언론에서 많은 해석을 붙이잖아요. 이런저런 전략적인 이유로 각을 세우는 거다. 그런데 그냥 싫어서 싸울 때가 많아요. 전략적으로 할 때도 있지만 그냥 보이는 게 다일 때도 많아요. 그리고 저희 당이든 민주당이든 여의도연구원이나 민주연구원이나 이런 데 기능들이 예전만 못해요. 미래를 위한 발전기가 물밑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요. 분업도 안 돼 있어요. 의원들이 오히려 저한테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요. ‘이거 어떻게 굴러가는 거냐’ 하고요. 그럼 저는 ’이건 의원님이 아셔야지 왜 저한테 그러세요’라고 하거든요. 또 권력자의 말 한마디를 해석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써요. 그러다 보니 민생이나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우리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죠. 반대로 열심히 하는 것도 많아요. 정치인들 되게 바쁘게 살아요. 지역 행사 다니랴, 민원 해결하랴. 열심히 사는 건 맞아요.
호남에서 지역 정치의 민낯도 목격하셨을 것 같은데요. 특정 지역의 지지, 권력을 한 당이 독점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있나요?
민주당이 호남에선 기득권 구태 중의 구태죠. 지역 유지들과 지역 정치인들의 유착이 굉장히 강합니다. 중앙보다 스케일이 작기 때문에 언론들의 감시 기능도 약하고요. 지역 언론도 민주당 친화적입니다. 행정부, 지방 의회죠, 언론, 시민사회단체, 사업가가 하나의 거대한 이권 카르텔로 묶여 있어요. 순천에서 저한테 행정소송 의뢰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랑 소송하면 오히려 제가 열심히 할 것 같다고 찾아오세요. 지역 변호사들도 민주당과 다 연줄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이 많거든요. 지역 유지 세력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할 때도 이 사람이 민주당에 연줄이 있다면서 저한테 해 달라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이 거대한 카르텔이 지방 정치를 굉장히 혼탁하고 부패하게 해요. 그러다보니 민주당 출신의 젊고 유망한 정치인들도 호남에 가서 정치하려 하지 않아요. 그만큼 혼탁한거죠. 민주당 입장에서도 호남에서 경쟁력 있는 인물을 발굴할 필요도 없어요. 경쟁이 없으니까요. 비슷한 비판을 경북의 국민의힘에도 할 수 있어요. 그래도 경북의 민주당이 저희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죠.
정말 화가 나는 건 이것 때문에 비수도권 정치가 수도권 정치를 이길 수가 없다는 거예요. 수도권이 돈도, 인구도 더 많고 모든 화제의 중심이 수도권인데 비수도권 정치가 어떻게 이깁니까. 이런 상황에서 유망한 신인 정치인들은 기회가 열려 있는 수도권에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이준석 전 대표 고향이 대구지만, 대구 가서 정치합니까? 공천도 안 줘요. 영호남의 일당 독점 체제가 유능한 사람들의 도전을 막고 지방 정치인들의 수준을 떨어트리는 거예요. 지역 균형 발전도 멀어지고요. 안그래도 적은 비수도권의 정치력이 동서로 갈려져 있으니 수도권에 상대가 안 되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결 구도로 끌고 가려는 건 아니지만, 대등한 정치력이 부딪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요.
'연고가 있는 지역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그 지역의 필요를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많이들 말하잖아요. 그걸 반박해 주신 게 재밌었거든요. 오히려 외지인이기에 더 잘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요.
그럼요. (연고가 있는 지역에선) 매너리즘에 빠지는 면이 있어요. 저는 연고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호남이 사람 가려 받을 처지가 아니에요. 인구 측면에서도 오겠다는 사람 다 받아야 되는 상황이고, 정치의 측면에서도 유능한 사람이면 와서 자기 비전을 발표해 보라고 하는 게 무조건 이득입니다. 수도권에서 정치인 뽑을 때 고향이 어디인지 따지지 않잖아요. 유능한 사람이면 뽑아서 쓰면 되는 거잖아요. 비수도권도 그런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인재 풀을 스스로 줄일 필요가 없어요. 우리 지역을 발전시킬 만한 비전이 있으면 무조건 오라고 해야죠.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 청년 정치인들의 진입 장벽 모두 정치 시스템 개혁이 필요한 문제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의 변화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착각하면 안 되는 게, 어느 나라든 정치에 뛰어드는 게 쉬운 곳은 없습니다. 저는 청년이 정치권에 무조건 더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봐요. 꽃가마 태워주는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요. 시대 변화에 조금 더 민감하고 새로운 담론들을 제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청년이 유리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죠. 결국 그 능력을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아야 돼요.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는 게 중요합니다. 각 지역의 토호 세력들이 정치권을 꽉 잡고 새로운 도전자의 진입을 가로막는 시스템은 당연히 깨져야 하죠. 하지만 정치에 입문하고 도전해서 승부를 보는 건 원래 어려운 일이에요.
일부 시스템의 개혁은 필요합니다. 저는 해당 선거 1년 전에 영입을 끝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으실 수도 있지만, 결국 신데렐라들은 막판에 들어오거든요. 이들은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아서 들어오지 않아요. 당시에 공천하는 당 대표나 공천관리위원장의 영향으로 갑작스럽게 막 들어오거든요. 스펙이나 스토리가 좋거나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의지가 꺾이는 거예요. 내가 정치적인 활동으로 인정받는 것보다 윗사람한테 잘 보여서 빨리 꽂히길 원하게 되죠. 그걸 원하는 순간 청년 정치는 청년 정치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수혜를 청년 정치인에게 주는 사례가 많지 않나요?
있죠. 사실 이준석 전 대표가 처음에 정치에 들어온 것도 그렇죠. 저도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신진 정치인들도 내가 노력해봤자 소용 없고 그냥 줄 잘 서서 좋은 지역구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런 걸 없애야 됩니다. 그렇다고 인재를 영입하지 말자는 게 아니고요. 최소한 해당 선거 1년 전에 사람을 뽑아서 정치 활동도 해보고, 당원도 모아보고, 당원들과 토론도 해보고, 이런저런 위원회 활동도 해보고, 선거 교육도 받아보게 하자는 거죠. 이 당의 정체성과 내가 맞는지, 내가 평생 직업 정치인으로 살 각오가 됐는지, 이런 것들을 나름대로 검증하고 나서 공천해야 해요. 공천 며칠 전에 갑자기 영입하니까 정치의 진정성을 가지고 투신하려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거죠. 누가 나를 영입해 줄 때까지 팔짱 끼고 기다리거나 줄만 잡으려고 해요. 그건 정치 활동이 아니에요. 도전자들이 언제든지 들어와서 제대로 활동하면 승부를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게 중요해요.
단순히 기회의 공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을 넘어서 결과적으로 질 좋은 정치인들을 많이 생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걸까요?
그럼요. 제가 지난번에 공천 심사를 하면서 제일 놀랐던 게, 공천 신청자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요. 자기소개서, 재산 관련 자료, 직무 수행 계획서 이런 것들은 있지만 객관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뭘 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어요. 그냥 구글링 해서 보는 거예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저도 구글링조차 못 해요. 여론조사 결과가 있으면 그걸 보면서 걸러내는 거고.
그래서 지금 혁신위 안에서 인재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다루고 있어요. 일반 사기업들도 하는 건데요, 인재 데이터베이스에 출마 희망자가 자기 활동을 기록할 수 있어야 해요. 선거 들어가기 전 일부 기간에 데이터베이스를 오픈해서 후보자들끼리 상호 검증도 할 수 있게 하고요. 상호 검증을 통과한 건 공천 자료로도 쓸 수 있어야 돼요. 지금은 어떤 정치인이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가 없어요. 자기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걸 그대로 믿을 수는 없잖아요. 객관적인 평가 자료 없이 공천관리위원회가 갖다 꽂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이런 것들을 좀 없애야지 유능한 사람들이 공정한 평가를 받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뛰어들어올 거 아니에요. 연줄도 없는데 공정한 평가를 받을 기회까지 없다고 생각하면 누가 여기 들어와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 CLUB
일반 국민들은 자신이 정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투표밖에 없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투표 외에 내가 원하는 정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무궁무진합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 지역의 지역위원장이든 당협위원장이든 한번 연락해 보세요. 활동하고 싶다고 하면 온갖 것들을 제안할 겁니다. 정책과 관련한 걸 하고 싶다고 하시면 다 받아들일 거예요. 저도 누가 찾아와서 이런 분야에 대해 일하고 싶다고 하면 무조건 좋아해요. 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당에 연락하셔도 좋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늘 부족하거든요. 당에 연락하시면 하고 싶은 걸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내가 오토바이를 타는 국민의힘 지지자에요. 그러면 국민의힘 지지자 중에 오토바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 모아보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그렇게 해서 오토바이와 관련된 정책을 당에 제안하면 무조건 받을 겁니다. 생각보다 당의 문턱이 낮아요. 개인이 민원을 해결한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지만,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정책적 제안을 하는 것에는 다들 열려 있습니다. 고민만 하시기보다 해당 지역 의원이나 당협위원장한테 연락해 보면 재밌을 거예요. 전화 안 받으면 문자 남겨놓으시면 됩니다.
정치인은 국민들을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반대로 국민은 어떤 마음으로 정치인을 보는 게 좋을까요?
자기 생각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응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가면 갈수록 선명한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인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더 강하고 선명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주목 받고, 많은 응원도 받죠. 근데 세상 일이 늘 흑과 백은 아니에요. 저도 원래는 경쟁력, 효율성 이런 걸 중시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순천에 와서 정치하면서 경쟁력과 효율성만 생각할 수 없겠다, 지방도 살아야 되고, 덜 배우신 분들도 살아야 되고, 가난한 사람도 살아야 되고,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사람도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 한 면만 본 것일 수도 있겠다. 회색분자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우리 시민들이 유연한 정치인들을 응원해 줄 필요도 있지 않나 싶어요. 대신 정치인이 생각이 바뀐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돼요. 비겁하게 이랬다 저랬다 하라는 게 아니에요.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정치인들을 많이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어요.
정치 소식을 보다 보면 지칠 때가 많잖아요.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음을 잘 다독이고 정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본인이 관심 있는 개별적인 이슈가 있는 게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중앙정치 이슈를 그냥 쭉 따라가기보다 내가 관심 있는 특정 분야를 만들어 놓으면 좋을 것 같아요. 국제 정치에도 관심을 더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우리 정치를 보면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고요. 또 요새는 여야가 웃으면서 하는 예능 같은 방송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간혹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정 화나면 당분간 안 보시면 되죠. 화날 때까지 굳이 꼭 봐야 됩니까? 그냥 적당히 쉬실 때는 쉬시다가, 또 본인이 관심 있는 거 있으시면 보면 되죠. 저도 짜증 날 때는 안 봐요.
마지막으로 애정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재미없는 얘기를 재미있게 해야 돼요. 요즘 자극적인데 자극적이지 않은 척하는 사람들도 많고, 자극적인 걸 그대로 내보내는 방송도 많은 게 걱정이거든요. 재미없는 얘기를 풀어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 역할을 애증의 정치클럽이 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