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를 기억하는 방법

참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태원 참사는 ‘사회적 참사’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사회 전체에 퍼졌다. 참사를 직접 목격한 사람과 희생자의 주변인은 물론, 미디어를 통해 참사 현장을 보게 된 사람들에게까지 집단적 트라우마가 남았다. 둘째, 참사의 책임을 사회에 물어야 한다. 종합하자면 이태원 참사는 책임 규명부터 트라우마 치유까지의 전 과정이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사회적 참사’다.

그렇기에 사회적 참사에 대한 기억은 단순히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데 그쳐선 안된다. 기억을 통해 사회가 공유하는 정신적 충격을 다스려야 하고, 같은 참사의 반복을 막아야 한다. 참사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예방책이 필요한지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곧 ‘기억하는 일’이다. 또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동시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많은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구성원 전체가 책임감을 갖고 참여해야 할 일이다. 사회적 참사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었던 일이고, 누구나 겪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주도해야 하는 것은 정치다. 여러 참사를 계기로 재난안전법이 만들어지고 정비돼 왔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비극은 정치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과연 과거의 사회적 참사들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삼풍,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그리고 이태원

한국 사회가 참사를 대하는 방식은 기억보다는 망각에 가까웠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그 예다. 삼풍백화점은 무리한 설계 변경 및 부실 공사, 관리 당국의 감독 부실 등으로 인해 붕괴했고, 502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참사 약 10년 후, 무너진 삼풍백화점 부지에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지어졌다. 사고 현장에는 참사의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은 현장에서 4km 떨어진 양재시민의숲에 세워졌다.

한국에서 사회적 참사를 다루는 방식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계기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참사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옥시레킷뱅키저가 출시한 가습기 살균제는 약 2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의 사망자는 304명이다.

2017년 국회는 국가 차원의 피해자 지원 방안을 담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사건에 책임이 있는 기업인 옥시레킷뱅키저와 애경산업은 2022년 4월 피해 조정안을 거부했다. 기업이 내야 할 분담금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공론화 1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보상과 사과는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애도의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지는 것에 대해 ‘언제까지 슬퍼해야 하느냐’거나 ‘지겹다’는 반응이 있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인식하지 못해 나타난 반응이다. 이런 냉소적인 반응은 참사가 남긴 심리적 상처에 대한 사회 차원의 대응에 걸림돌이 된다. 반면 미국은 9.11 테러 발생 이후 10년 넘게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처럼 한 번의 거대한 참사가 주는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오랜 기간의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를 연달아 겪은 20대(90년대생)의 심리적 충격 누적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세대는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20대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또래가 대형 참사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연달아 지켜보며 ‘누적된 트라우마’를 겪었다. 반복된 참사 경험으로 무력감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세대 전체로 확산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치는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어떤 식으로든 응답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의무의 이행은 ‘어른들이 미안하다’거나 ‘정치가 잘못했다’는 상투적이고 공허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않은 ‘무한 책임’이라는 말은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 많은 참사를 겪고도 사고가 반복된 이유다.

한국 사회가 겪어온 사회적 참사의 현장. 왼쪽부터 차례대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2014년 세월호 침몰,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겪은 사회가 해야 할 일

참사 발생 직후 정부가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비 지원을 약속하자, 이들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일주일 만에 5만 명을 돌파했다. 청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전‧현 정부의 독단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으로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참사 지원금을 주는 것에 대한 ‘찬반 투표’ 게시글이 올라왔고, 많은 이용자가 지원금 지급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논쟁은 ‘피해자들이 안타까워서 지원금을 준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그저 이들이 불쌍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건이 사회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참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논쟁이 벌어진다면 여론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정부는 이미 일시 지원금 지급을 결정했고,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는 ‘왜 이번 참사가 우리 공동체의 책임인지’를 설명해야 하고, 그렇게 기억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왜 이번 사고가 공동체의 책임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결국 참사의 원인을 규명해야 나올 수 있다. ‘왜 참사가 벌어졌는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돌아가야지만 정치는 해결책을 만들고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상처의 치유는 그저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참사를 잘 ‘기억’해 더 이상 같은 비극을 겪지 않는 사회를 만들 때 우리는 비로소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 단지 이번 참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수많은 사회적 재난에 대해서도 정치는 기억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제 정치는 ‘가만히 있으라’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된다.

by 에디터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