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개편, 앞으로 어떻게 일하지?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말이 엇갈린 것이 이슈가 됐다. 고용노동부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부정한 거다. 둘 사이 어떤 소통의 문제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윤석열 정부가 이전 정부의 노동 정책들을 손질하려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주 52시간제 개편을 두고 대선 이전부터 말이 많았는데... 직장인의 미래를 두고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한번 알아보자.


지금 상황 알아보기


고용노동부에서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주 52시간제에서는 주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를 월 단위로 변경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개념부터 짚고 가기


노동시간을 두고 왜 노사는 갈등하게 되는 걸까? 노동시간 유연화는 무엇일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아보기 전에 이것부터 정리해보자.

노동시간가장 기본적인 노동 조건이자 기업의 생산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노사 관계의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여가 생활과 휴식이 보장되는 만큼 일하고자 한다.

한편 기업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여가 시간을 보장해주되, 최대한의 생산성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그러니 노동시간을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가 노사 간 경합의 영역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라는 문구가 나오는 까닭이다.

노동시간 유연성이란 노동시간의 길이나 노동시간대를 경직된 형태(예를 들면 8시간 전일제 노동)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노동 시간 유연성 확보에 대한 요구는 사용자(경영자나 고용자), 노동자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다. 노동자의 경우는 생애주기별 특수한 시간 수요에 맞춰 노동 시간을 변동시키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육아나 고령자에 대한 돌봄을 위해 임시 휴직이나 노동시간의 단축을 원할 수 있다. 한편 기업의 입장에서도 시장 변동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길 원한다.


알면 좋을 맥락


과로 사회 한국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192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00시간대)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산업화 시대부터 장시간 노동이 하나의 사회적 규범과 작업장 내 규율로 자리잡아 왔다. 회사에 밤늦게까지 남아 야근을 하는 것이 곧 ‘성실하고 헌신적인 노동자’로 비춰지는 방법이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노사 간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유지돼오기도 했다. 저임금 체제에서는 노동자들도 노동시간을 증가시키려 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오래 일해서라도 가계소득을 높이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이 초과 근로를 통해서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기업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며 장시간 노동 체제가 지속돼왔다고 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개인의 건강을 해치고 산업 재해 사고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노동자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 위험이 되기도 한다. 장시간 노동과 일 중심의 삶은 육아나 돌봄 등 가족 생활의 병행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여전히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규범이 남아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일과 돌봄 노동의 이중고를 안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 상한제’


「근로기준법」은 한 주에 최대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합친 수치다.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1.5배의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법정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정해진 것은 2004년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52시간을 훌쩍 넘기는 장시간 노동이 이뤄져왔다. 고용노동부가 ‘1주는 휴일을 제외한 평일 5일’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평일 52시간에 토일 각각 하루 8시간씩 일하면(52+8+8) 최대 68시간씩 일할 수 있었다.

2018년 초, 문재인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고 정의함으로써 주당 최장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못박았다. 실제 법 적용은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뤄져 2021년 7월부터 5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시행됐다.

개정 이후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경영계의 반발이 잇따랐다. 이에 주52시간제의 보완책으로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게 유연근로제의 확대다.

유연근로제


  • 탄력근로제: 노동시간 관리를 1주가 아니라 더 긴 단위 기간으로 하는 것. 예를 들어 3개월 간 탄력근로제를 시행한다고 하면, 3개월을 평균 내서 주당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집중적으로 일하는 대신 일이 없을 때는 일을 적게 하는 식이다. 단, 연장근로시간은 평균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주 12시간으로 지켜져야 한다. 특정 주의 노동시간이 64시간을 넘길 수 없으며, 출근일과 그다음 출근일 사이에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 선택근로제: 총 노동시간 범위 하에서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근무일과 시간을 조정·결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 1개월 이내(연구개발 업무의 경우 3개월)의 정산 기간을 평균 내서 한 주 간 노동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탄력근로제는 법정근로시간만 조정 가능하나 선택근로제는 연장근로시간까지 조정할 수 있으며, 별도의 노동시간 상한이 없다. 역시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탄력근로제는 대표적인 사용자 친화적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다. 탄력근로제 시행 시 노동 시간 조정의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다. 사용자 측에서 주문량이나 계절적 수요 등을 고려해 업무량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의 효과도 있다. 원칙적인 주52시간 상한제 하에선 일감이 많은 시기를 대비해,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초과 근무에 대해 1.5배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면 본래 가지고 있던 인력만으로 증가한 업무량을 감당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기존 최대 3개월 이내에서 6개월까지로 확대했으며 도입 요건도 완화했다. 선택근로제 산정 기간도 연구 개발 업무에 한해 3개월로 늘렸다. 기업이 노동시간 관리를 더욱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거다. 이 때문에 유연근로제 확대를 두고도 주 52시간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입법 취지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이번 정부에선 노동시간 규제 틀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걸까?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시장 개혁 방안 발표에서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주52시간제의 기본 틀 유지",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를 강조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1) 연장근로시간 관리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1주 12시간'으로 한도가 설정돼있는데 이를테면 '1달 52시간'(12X4.3주) 등으로 총량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한 주에 최대로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외에도 2)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도입 3)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가 제시됐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업무량이 많을 때 노동자가 초과근무를 통해 초과시간을 저축해두고, 일이 적을 때 휴가 등으로 소진하는 제도다.

주 52시간제 유연화, 왜 필요하다는 건데?

  • 보완 제도도 여러 가지 준비되어 있는데, 왜 굳이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걸까?


고용노동부는 현재의 주 52시간제가 산업 현장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거나 주문량에 맞춰 물품을 제작하는 업종은 일을 몰아서 해야 할 때가 많다. 주로 IT업계, 연구용역, 하청업체, 중소기업이 여기 해당한다. 이런 업체들은 주 52시간제로 연장근로시간의 제한이 커지면서 수요에 맞춰 노동시간을 조정하기가 어려워졌다. 급하게 주문이 많이 들어와도 해당 주의 연장근로시간을 이미 써버렸다면 일을 더 할 수 없어 납품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이에 경영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유연근로제의 사용 기간이 연장되는 등 주 52시간제의 문제를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 적용하긴 어렵다는 주장이 많았다. 탄력근로제의 경우 시행 2주 전까지 해당 기간의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미리 확정하기 어려운 사업장의 경우 사용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애초에 업무량을 예측하기 어려워 유연근로제를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없는 제도란 거다. 매번 신청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행정적 낭비가 심하다는 얘기도 있다.

고용노동부의 계획대로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하게 되면 기업들은 불규칙한 업무에 더 손쉽게 대응할 수 있다. 주 단위로 관리할 때보다 연장근로시간의 배치를 유연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단위일 때는 최대 12시간을 한 주 안에서 배분해야 했지만, 월 단위에선 12시간에 4.3주(연평균 월별 주 수)를 곱한 52.1시간을 한 달 안에서 배분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월 단위 관리를 도입할 시 11시간 휴식 보장을 포함할 계획이 있다고 발표했다. 유연근로제를 쓸 때는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의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오전 9시~오후 6시가 법정근로시간이고,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연장근로를 했다면 최소한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는 쉬어야 하는 거다. 이를 월 단위 관리에서 보장되도록 해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논리다.

경영계는 이번 개편 방향이 경제 위기와 인력난 대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무량 증가에 추가 고용 없이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어 기업의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과로 많은 한국, 부작용은 없을까?

  • 한국인 하면 과로 아닌가? 지금도 많이 일하는 것 같은데… 연장근로를 더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거면 과로 문제도 심해지지 않을까?


앞서 설명했듯 긴 노동시간은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그 해결책으로 주 52시간제가 도입됐다. 이후 노동시간이 실제로 감소하고, 근로여건 만족도가 27.7%(2017년)에서 32.3%(2019년)로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OECD 평균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긴 편이다. 편법으로 주 52시간을 초과하면서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업장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포괄임금제의 악용이다. 포괄임금제연장, 야간 근로수당 등을 실제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미리 정한 만큼 지급하는 방식이다. 노동 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 사용하도록 돼있는데, 포괄임금제로 계약을 했다는 이유로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를 강요해놓고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노동계는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내놓으면 편법적 과로가 더욱 성행할 것이라 우려를 표했다. 일주일 내의 노동시간 한도가 합법적으로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초과근무를  쉽게 허용하는 문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제도의 남용을 방지하고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사 합의를 통해 연장근로시간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개편안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노사 관계를 고려할 때 수평적인 협상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괄임금제 악용에서 볼 수 있듯 고용자의 압박에 부당한 처우를 감수하면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이미 존재하고, 노동자가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노사 합의’를 안전키로 내세우는 것이 충분치 않다는 시각이다. 또한 아직 개편 방안이 완전히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사 합의’의 장에 누가 나설 수 있는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노동시간 유연화가 산업재해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 이상인 사업체의 산재율이 40시간 미만인 사업체의 5배였다. 전체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불규칙한 노동시간도 노동자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단기간이라도 평소보다 급격히 일을 몰아서 하게 되면 위험한 과로가 되고 산재율도 올라갈 수 있다.


오늘 담소 마무리


아직 ‘개편 방향’이 제시된 것 뿐인 만큼, 확정된 노동 정책 개편 사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다음달 중 노동 전문가들을 모아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법안과 정책 내용을 마련할 예정이다.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협력을 구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주 52시간제 개편안은 확정되더라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시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워라밸은 소중하니까, 앞으로 노동 정책을 두고 오가는 이야기에 애정클과 함께 귀를 기울여보면 좋겠다.


오늘의 담소 요약


  • 고용노동부에서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연장근로시간을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 고용노동부와 경영계는 현재의 주 52시간제가 산업 현장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해 특정 업계에 고충이 되었다고 말했다.
  • 노동계는 이미 편법적 초과근무가 성행화는 상황에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내놓으면 과로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